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1980년대 중반으로 기억된다. 필자가 충북도문화재위원이었을 때 청주시 북이면에 있는 지천 최명길(遲川 崔鳴吉, 1586~1647) 후손들이 묘소를 도문화재로 지정해달라는 민원이 있었다. 최명길은 병자호란 당시 영의정으로 척화론에 맞서 화의를 주장한 인물이다.

인조가 피난한 남한산성 행궁에서 한편은 화의를 해야 한다고 하고 한편은 끝까지 항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 있었다. 항복문서를 작성한 최명길, 이를 어전에서 찢은 김상헌의 눈물겨운 얘기는 영화 남한산성에서 리얼하게 재현되기도 했다.

최명길의 묘소는 당대 영상의 위상을 보여주듯 가장 크고 묘역 안의 석물들도 달랐다. 같은 시대 문장으로 이름을 날린 남구만(南九萬)이 쓴 묘비는 대리석으로 조성한 비였으며 장엄한 신도비는 중요한 문화재였다. 당연히 도문화재나 나아가 사적으로 지정할만한 유적이었다.

그런데 지정하는 회의에서 위원들 사이에 찬반의견이 팽배했다. ‘청나라에 굴욕적인 화의를 주장한 최명길의 유적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목소리가 컸다.

최명길의 묘소는 이런 반감 때문에 근대까지 홀대 받아왔다. 석물은 퇴색돼 기울어지고 그 존재를 아는 이들이 없었다.

그는 주화론자였지만 김상헌과 청나라에 끌려가 심한 옥고를 치렀다. 조선에 돌아와서는 병자호란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정을 추스르는 데 직분을 다했다. 그런데 조선의 지식인들은 그가 지조를 잃고 주화를 했다는 이유로 현대까지 폄하하고 있다.

일제강점 치하에서 해방된 지 78년, 대한민국의 역사인식은 두 동강으로 쪼개져 있다. 한쪽에서는 반일 감정을 부추기며 통호를 주장하는 정치인이나 국민들에게 친일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보수진영은 이제 한일관계는 과거사로 돌리고 새로운 양국관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실용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문제의 요인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일본의 보상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1974년 특별법을 제정해 8만 3519건에 대해 청구권 자금 3억 달러의 9.7%에 해당하는 92억원을, 2007년 또다시 특별법을 제정해 7만 8000여명에 대해 약 6500억원을 각각 정부가 재정으로 배상했다.

독일사정은 어떤가. 1970년 총리가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은 이후 49년째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Holocaust)의 역사를 반성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사는 22만명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에게 지원금을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다.

생존자가 사망하면 그 배우자에게 9개월간의 연금을 지급한다. 독일의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은 주기적으로 행해지는 과거사 반성과 자국이 행한 전쟁범죄의 행위와 규모를 교과서에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 정도는 돼야 한다.

그러나 역사에 집착해 현실과 미래를 외면하는 일은 현명치 못하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의 안보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줄 동맹국이다. 경제협력도 그렇다. 경제계는 한국의 대일경제 협력이 어느 시기보다 긴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시장 점유율은 55%로 세계 1위, 장비는 35%로 미국(40%)에 이은 2위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초강국 한국이 이런 나라를 이웃에 두고도 활용 못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얼마 전 내놓은 피해배상 대책으로 지난 문재인 정권 때 일본이 취했던 반도체 부품 등 수출 규제가 풀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민주당이 대통령의 고충어린 결단을 제2 이완용에 견주어 폄하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려운 지경에서 나라를 구하려면 적국의 배라도 함께 타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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