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야말로 '모든 것의 어머니'
'천하제일' 백토분장 청회자

글. 사진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중국인은 고려청자를 보고 ‘천하제일’이라고 칭송하니 도자기 전공자들은 그 말에 따라 천하제일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만일 세계에서 자기의 창시자인 중국이 고려청자가 ‘천하제일’이라는 말을 안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러나 고려청자는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도자기 연재를 쓰다 보니 전에 들은 이야기가 아니고 처음 듣는 용어들이 많아서 낯설 것이다. 그러나 <도자기의 원류와 상징>이라는 주제로 쓰는 것이 세계 최초의 작업이라 여러분의 고충만큼 필자의 고민도 많다. 도자기가 <만병>이며 <보주>이고, 도자기의 주제가 <문양>이라 하니 도자기 전공자들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도 1-1 백토분장 박지 청회자 영화문 항아리(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도 1-1 백토분장 박지 청회자 영화문 항아리(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문양을 세계 최초로 연구하여 모두가 지나쳤던 도자기 표면의 문양이 주체가 되었으니 여러모로 이 연재는 도자기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건축이 ‘모든 것의 어머니’인 줄 알았는데, 도자기를 연재하면서 연구해 보니 도자기야말로 ‘모든 것의 어머니’인 줄 강의 준비하면서 뇌리를 스쳤다.

건축은 그 자체로 이차원적인 회화의 세계, 그리고 삼차원적인 조각적 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으며, 실제로 조각, 회화, 공예 등 모든 장르를 포용하여 ‘모든 것의 어머니’인 줄 알았고 르네상스 건축가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문양>, <만병>, <보주>를 세계 최초로 완벽히 깨쳐 오면서 이상 세 가지 모두를 명료히 나타내고 있는 도자기야말로 ‘모든 것의 어머니’라는 것을 통감하고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것처럼 도자기에서 신전(神殿)이 화생하고, 도자기에서 모든 신(神)들이 화생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으니 말 그대로 혁명적 작업이 아닌가.

고려청자를 한 해 동안 추구하여 오다가 조선시대 초기의 <분청사기>를 다루어 보니 이 역시 신천지의 세계여서 새로운 감동이 밀려와 이 역시 ‘천하제일’이란 생각이 든다. 세계 도자사에서 분청사기를 능가할 예술작품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분청사기’라는 명칭이 과연 옳은 것인지 검토하는 일이다. 회색 또는 회흑색 태토 위에 백토로 분장한 뒤에 유약을 씌워 환원염으로 구운 조선초기의 도자기를 일컫는데, 고유섭(1905~1944)이 처음으로 지은 ‘분장회청사기’의 준말이 분청사기다. 그의 최대 업적은 <조선탑파의 연구>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학계에서는 ‘분장회청사기(粉匠灰靑沙器)’란 용어를 ‘분청사기(粉靑沙器)’로 약칭하고 있다. 우선 ‘사기(沙器)’란 말은 그가 고려청자 예찬자인지라 낮추어 부르는 것이라 마땅하지 않다. 그렇다고 ‘분청자기’라고 할 수도 없다. 분청사기를 연재하여 보니 고유섭 선생은 개성박물관장을 지냈으므로 자연히 아름답고 정교한 고려청자 예찬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만든 용어를 분석하여 보니 분장을 했는데 ‘무엇으로’ 분장했는지가 빠져 있다. 무한한 기교가 가능했던 ‘백토’를 빠트릴 수 없다. 그리고 ‘분청사기’에는 ‘회청자’란 말이 적당하지 않아 보이고 청자와 관련 있는듯한 인상을 주므로 ‘청회색’이 어떨까 한다. 쑥색이 가장 좋지만 대응하는 한자가 마땅치 않다.

‘회청자’란 말은 청자와 혼란을 일으킬 수 있어서 필자가 만든 용어가 ‘조선 백토분장 청회자’란 것인데 매우 길다. 어느 것도 뺄 것이 없다. 더 줄인다면 ‘백토분장청회자(白土粉匠靑灰磁)’다. ‘백토’는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백토로 무한한 문양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 조선시대 자기를 고려청자에서 독립시켜 그 독자성을 강조하고자 하려는 마음에서 지어본 것이다.

이제 인화문이나 상감문에 이어 박지문(剝地紋) 기법의 자기를 다루기로 한다. 청회색 태토에 백토를 귀얄로 빠른 획으로 바른 다음 문양을 음각으로 표현하고 나머지 부분을 깎아 내 쑥색 바탕을 드러내게 하는 그런 기법이다. 우선 학계에서 말하는 ‘분청사기박지 모란문 항아리’를 다루어 보자. 필자의 의도대로 말하면 ‘백토분장 박지 영화문(靈花文) 청회자 항아리’다.

도 1-2 뒷면(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도 1-2 뒷면(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도 1-3 채색분석(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도 1-3 채색분석(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도자기에서 모란이라고 부르는 꽃은 모두 모란이 아니다. “그럼 뭐냐?”고 물으면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없어서 말문이 탁 막힌다. 그러나 이제 독자들은 ‘영화(靈花)’란 말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높이 45센티에 폭이 넓은 당당한 자기에 모란이 아닌 영화문들이 표현되어 있다(도 1-1, 1-2, 도 1-3). 국립박물관 소장으로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작품이다. 밑부분에는 백토를 바르다 만 것이 가슴을 친다. 채색분석해 보면 모란이라고 부르는 것은 모란꽃이 전혀 아님을 알 수 있다. 노랗고 빨간 것은 하트모양의 보주다. 말하자면 보주꽃이다. 붕긋붕긋한 넓은 잎들에는 모두 제1영기싹 영기문이 내재해 있다. 도무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꽃과 잎이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작은 원형 보주>가 있다. 이 작은 보주가 이 문양을 풀어내는 마지막 열쇠가 된다. 문양을 음각하고 나머지는 쑥색 바탕이 드러난다. 아름답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매우 한국적인 정서가 듬뿍 배어 있는 멋진 자기다. 멋진 만병이고 멋진 보주다. 어깨 부분에는 흔한 연꽃모양 대신 아래 넓은 부분의 영화와 같으므로 이곳에서 베풀어진 영화싀 성격을 더욱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지름 24.1센티, 높이 9.4센티.

도 2-1 백토분장박지 영화문 청회자 편병(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도 2-1 백토분장박지 영화문 청회자 편병(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도 2-2 위에서 본 것(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도 2-2 위에서 본 것(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다음 유명한 ‘백토분장 철채 영화문 자라병’은 학계에서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편병(粉靑沙器 剝地鐵彩牡丹文 扁甁)’, ‘분청사기박지철채모란문(粉靑沙器剝地鐵彩牡丹文) 자라병’ 등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어 혼란스럽다.

필자가 도자기의 원류와 상징을 처음으로 밝히고 있으니 용어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자기는 백토분장 청회다 중 백미다(도 2-1, 2-2, 2-3, 도 2-4). 채색분석해 보면 문양의 파악이 분명해진다. 원래 편병인데 뉘어놓으니 자라모양이 되므로 편병이 옳다.

도 2-3 채객분석(1)(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도 2-3 채객분석(1)(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도 2-4 채색분석(2)(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도 2-4 채색분석(2)(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중심부에 석류모양 보주 주머니를 간단히 표현하고 주변으로 일차적으로 노란 영기문 잎들이 발산하고, 다음 이차적으로 연두색 잎이 널리 발산하여 공간을 가득 채운다. 주변에 같은 단위의 영기문이 배치되어 있다. 채색분석하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다. 채색분석이란 추체험의 행위다. 아름다움을 넘어 매력 넘치는 멋진 걸작이다. 걸작이란 말을 처음 써 본다.

도 3-1 백토분장 박지 영화문 청회자병(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도 3-1 백토분장 박지 영화문 청회자병(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도 3-2 채색분석(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도 3-2 채색분석(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2.22.

다음 역시 멋진 ‘백토분장 박지 영화문 청회자병’도 위의 맥락과 같다(도 3-1, 도 3-2). 박지인 경우는 쑥색 바탕색이 도드라져 그 여백의 아름다움에 시선이 간다. 긁어낸 부분에 철분이 많은 안료를 붓으로 덧발라 검은색을 띠게 되어 노란색이 감도는 백토와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백토분장 청회색 자기는 역시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에 유례가 없는, 상감기법보다 더 위대한 문양 표현기법이다. 그래서 천하제일이고 그 후손인 여러분도 천하제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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