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보살이 지물로 삼은 영기문
역시 만물생성의 근원 상징해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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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조선 불화, 호암미술관 소장, 조선 후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1.13

2016년 2월 27일 오후 5시, 경기도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에 가서 조선시대 투구와 칼집 등을 촬영해나가다가 어두운 진열장에 걸린 불화를 보았다. 큰 카메라로 촬영하여 확대해 보니 여래 주변의 보살들과 사천왕상, 십대제자 등 등장인물 모두가 필자가 찾아낸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을 지물로 들고 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함께 목걸이처럼 두르고 있기도 했다. 일찍이 공주 계룡산 기슭 학봉리 분청자기 가마에서 수습된 파편들을 국립박물관에서 보고 경악했었는데, 이번에는 불화에서 4가지 형태소를 보다니 꿈만 같았다. 이 불화는 대웅전이나 관음전 같은 사찰의 큰 법당들에 걸렸던 것이 아니라, 부속 암자에 걸렸던 불화임이 틀림없다. 때때로 암자에서 큰 절 법당에서는 걸 수 없는, 매우 흥미진진한 불화의 도상을 가끔 보아왔기 때문이다.

지물로 삼은 것을 살펴보니 연이은 제1영기싹이 길게 솟아 있고, 그 끝에서는 제3영기싹으로 매듭짓고 있다. 그런데 그런 영기문은 왜 목에도 걸었는지 알 수 없다. 목에 건 영기문은 마치 목걸이 같다. 목걸이를 대개 보석 목걸이로 알고 있지만, 목걸이가 보살이나 사천왕상으로부터 발산하는 무량한 보주임을 터득한다면, 이렇게 처음 보는 목걸이 모양 영기문도 이해할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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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 영기문을 들고 있는 보살, 부분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1.13

7년 만에 그 파일을 열고 보정하여 보았으나 워낙 어두워서 흔들린 사진이 많았다. 다행히 그 당시 호암미술관에 부탁하여 받아놓은 사진이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나마도 사진이 좋지 않고 해상도가 낮아서 절망적이었다(도 1). 등장하는 보살들, 사천왕상, 십대제자와 지장보살이 지물로 삼은 영기문들을 각각 부분적으로 잘라서 확대하여 여러 번 그려보니 조금씩 그 조형 원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도 2). 필자는 이미 여래와 보살의 지물은 만물생성의 근원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조각이나 회화에서 흔히 연꽃 가지를 지물(持物)로 삼고 있다고 학계에서는 말하지만, 이미 설명해온 바와 같이 연꽃은 보주를 상징하므로 보주를 지물로 삼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17세기 중반과 후반에 걸쳐 활약한 주종장(鑄鐘匠) 사인(思印)은 흔히 사인비구(思印比丘)라 불린다. 열점 가량의 뛰어난 종을 남기고 있는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전시 중인 1686년 작 청동 대종이 그중 하나다. 종신에는 구름모양 영기문에서 화생하는 보살의 지물이 바로 제3영기싹이다. 그 지물은 범종들에서 그 예가 있어서 호암박물관에서 처음 본 보살들의 영기문 지물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 영기문들의 전개 과정은 필자가 거의 매일 그려서 강의하고 있는 것과 똑같아서 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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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1. 제1보살의 영기문 지물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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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2. 제2보살의 영기문 지물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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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3. 도 2의 영기문 지물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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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4. 자장보살의 영기문 지물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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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5. 제5보살의 영기문 지물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1.13

그 불화에 보이는 영기문들을 어렵게 파악하여 그려보니 반드시 두 줄로 전개하고 있는데, 그동안 필자가 파악한, “영기문은 두 줄로 전개하기 시작하다가 두 가닥으로 갈라져 더욱 넓게 확장하며 전개하기 위한 것임”을 이 불화도 증명하고 있다. 영기문들이 모두 비슷비슷하므로 다섯 가지만 선정하여 채색분석해 보았다. 편의상 제1, 제2 보살이라 이름 지었다(도 3-1, 3-2, 3-3, 3-4, 3-5). 금강저도 보주 양쪽에서 나오는 제3영기싹임도 알게 되었다.

그다음 두 영기문만 취하여 한 줄로 단순화시켰다(도 4). 그동안 필자가 찾아서 전개해본 기본적인 영기문들을 이 기회에 싣는다(도 5). 이 불화에서 표현된 영기문의 전개를 이제는 여기에 더 추가할 수 있었다. 즉 연이은 제1영기싹과 연이은 제3영기싹이 섞여서 이어지는 영기문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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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4. 두 영기문만 더욱 간략화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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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5. 영기문의 기본적 전개 원리(필자 작성)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1.13

필자가 학봉리를 ‘조선실록’에 ‘동학동’이라 한 것을 때때로 썼던 까닭은 가마와 지척에 있는 동학사와 연결시켜서 동학사의 승려장인이 철화 분청자기 제작에 참여했다는 실마리를 찾기 위함이었다. 8세기에 창건되어 역사적인 작업들이 켜켜이 쌓여 있을 터이지만, 수많은 전란으로 최근 지은 법당들만 즐비할 뿐, 오래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 11월 29일 가마터에서 파편들을 줍고 나서 동학사 대웅전에서 오체투지한 까닭은, 제발 학봉리 철화 분청자기의 남다르고 역동적이고 단숨에 그린 영기문이 승려장인의 솜씨임을 증명해 달라고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위함이었다. 고려 불화와 조선 불화를 오랫동안 심도 있게 연구하고 강의해 왔으므로 틀림없다고 확신하고는 있으나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호암박물관에서 이와 같은 조선시대 말기의 불화를 보고는 마침내 결론을 내릴 수 있어서 기쁘기 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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