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의 문양들은 모두 물을 상징
조형언어로 세계와 인류 바라봐야
도자기, 주체로서의 문양 중요해

글. 사진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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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1. 분청자기 상감 영어순환문 매병 ⓒ천지일보 2023.02.10

분청자기는 표면을 백토 분장해서 문양 표현기법이 매우 다양하다. 이번에는 인화문 기법과 철화 기법에 이어 상감 분청자기를 다루려 한다. 분청자기는 고려청자에서 조선백자에 이르는 과도기적 존재가 아니다. 조선의 통치이념인 유교에 입각한 전혀 새로운 미감을 보이는 질박한 자기를 창조했다. 특유의 흰색 분장으로 인해 문양의 표현기법이 매우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하며 세계 도자사에서 특기할 만한 점이다. 전국에서 대량으로 양산해서 거친 것도 많지만, 궁궐에서 썼음 직한 매우 정교하고 뛰어난 색의 작품들도 있다. 이 글에서는 상감기법으로 만든 분청자기를 다루려고 한다.

‘분청사기 상감 물고기무늬 매병’이란 명칭은 학계에서 만든 것으로 그리 탐탁하지 못하다(도 1-1). 올바로 관찰하고 감상하려면, 도자기도 불화나 불상처럼 밑부분부터 위로 살펴 올라가야 한다. 왜냐하면 모두가 화생(化生)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화생의 원리를 알면 내 주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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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2-1. 밑부분 ⓒ천지일보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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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2-2. 채색분석 ⓒ천지일보 2023.02.10

밑부분은 연꽃잎이라 모두 부르고 있으나 모두 보주를 표현한 것이어서 중심에 보주들이 연이어 있다(도 1-2-1). 역시 채색분석 해 보아야 구성을 파악할 수 있어서 문양의 전개 원리를 찾아낼 수 있다(도 1-2-2). 반타원형 보주의 윤곽을 겹겹이 표현하고 중심에 세로로 연이은 작은 보주들을 두었다. 그런 형태를 병렬하여 배치하고 사이사이에 이중으로 ‘싹’ 모양을 두어 전체적으로 제3영기싹 영기문을 이루고 있다. 바로 이 병렬된 보주들로부터 매병 형태의 항아리가 화생하고 있다. 즉 가능한 한 많은 보주를 밀집시켜 부여하여 강한 힘을 응축한 후에 마침내 만병 즉 보주인 항아리가 화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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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3-1. 순환문 부분 ⓒ천지일보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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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3-2. 채색분석 ​​​​​​ⓒ천지일보 2023.02.10

항아리 중심부에 원을 두르고 물고기 두 분을 순환시키는 모습으로 배치했다. 용 두 분을 순환시키는 표현과 같은 것으로 우주의 대 기운을 압축한 것이다(도 1-3-1). 밑그림을 그려서 채색분석하는 동안 엄청난 상징이 서서히 드러난다(도 1-3-2). 현실에서 보는 물고기가 아니므 로 영수(靈獸)와 영조(靈鳥)와 더불어 ‘영어(靈魚)’라고 부르기로 한다. 지금은 낯설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다. 영어의 배경에는 약간 휜 짧은 제1영기싹 영기문이 빼곡히 가득 차 있다. 제1영기싹은 물을 상징하므로 ‘영어의 영기화생’을 보여주고 있다. 순환하는 두 영어를 배치하여 이미 압축된 보주를 나타내고 있으나 원 주변에 작은 보주들을 연이어 둘리어서 보주임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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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4-1. 위에서 본 모양 ⓒ천지일보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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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4-2. 채색분석 ​​​​​ⓒ천지일보 2023.02.10

이어서 이 항아리를 위에서 본 것을 밑그림 그려서 채색분석해 보기로 한다(도 1-4-1, 도 1-4-2). 항아리가 보주이므로 구멍이 난 보주를 위에서 본 것과 같다. 항아리의 입을 도자기 전공자들은 ‘아가리’라고 험한 말을 쓴다. 만일 도자기가 만병(滿甁)이고 보주임을 알면, 그 입에서 만물이 생겨난다는 것을 일면, 아가리라고 감히 부르지 못할 것이다. 입 주변에 역시 무량한 보주를 머금은 각진 보주 모양이 병렬되어 있고, 그 밖으로 영기문이 둘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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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4-3. 영기문 긴 띠 ⓒ천지일보 2023.02.10

그런데 그 원형 띠 부분을 옆에서 보며 채색분석해 보니 전개 원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도 1-4-3). 즉 긴 파상문을 두르고 엇갈린 공간에 연이은 제1영기싹 영기문들이 배치되어 있다. 고구려 벽화를 연구해서 얻은 성과가 이런 분청자기에 그대로 나타나 있지 않은가. 모두 물의 다른 표현들이다.

지금까지 이 항아리의 표면 전체에 베푼 문양을 분석해보았는데 일체가 물과 관련된,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 그리고 보주 등 조형언어의 형태소 4개로 이루어진 다양한 영기문 표현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니까 ‘가득 찬 병’ 즉 만병 안에 가득 찬 물, 생명 생성의 근원인 물이 넘쳐흘러 항아리 표면 가득한 물을 여러 가지 다른 영기문 표현방식으로 채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환희작약하지 않을 수 없다. 표면의 문양들은 모두 물을 상징하고 있어서 항상 그렇듯이 이 분청자기 항아리의 본질도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제 ‘조형언어’로 세계와 인류를 바라봐야 한다. <문자언어의 폭력>을 극복하여 인류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해졌다. 도자기가 올바로 풀려야 모든 장르가 올바로 풀려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미술사학은 이제 세계 문화사를 지향하게 되었다. 작품의 연구도 귀납적 방법(歸納的 方法)으로 연구해야 하므로 필자는 세계를 누비며 가능한 한 폭넓게 작품들을 조사, 촬영하여 오며 결국 <영기화생론>이란 보편적 이론을 정립하게 되었으며, 그 이론으로 작품들을 다시 연역적 방법(演繹的 方法)으로 다시 연구하며 이미 보편적인 이론이 정립되었다고 하더라도 더욱 공고히 새로이 정립해 가야 하는, 순환적 연구 방법을 융합적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충실히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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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1. 분청자기 상감 영화문 술장군 ⓒ천지일보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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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2-2. 채색분석 ⓒ천지일보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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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1. 분청자기 상감 영화문 병 ⓒ천지일보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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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2. 영화 부분 ⓒ천지일보 2023.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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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3-3. 채색분석 ⓒ천지일보 2023.02.10

영화(靈花)를 대담하게 상감한 양감 넘치는 납작한 편병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런 것이 분청자기의 참멋이라 생각한다(도 2-1, 도 2-2). 중심의 빨갛게 칠한 부분이 핵심인 보주다. 분청자기 상감 영화문 병에 표현된 꽃 모양이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도 3-1, 도 3-2, 도 3-2). 

분청자기는 조선적인. 참으로 가장 조선적인 한국인의 위대한 창조라고 확신한다. 오랜만에 국립박물관에 가서 분청 상감 자기들을 살피며, <상감기법>은 한국이 세계 도자기에서 처음 시도한 <문양 표현법>임을 새삼 깨달았다. 분청자기 상감 영어 순환문 매병’의 밑그림을 확대경 대가며 그리다가, 아, 상감기법이 실제로 극히 어렵구나. 그리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실제로 소성(燒成)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얼마나 어려웠을지 통감했다. 나 역시 그런 심정으로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연재를 써나가고 있다.

내가 이처럼 문양을 강조하기 위해 어렵고 정교한 분석작업을 거치는 까닭은 오로지 도공들이 문양을 두드러지게 표현하려는 염원을 절절히 여러분께 전달하려는 마음이 아닌가. 그만큼 도자기에서 주체로서 문양이 중요한데 지금까지 모두가 문양을 무시한 것은 일종의 범죄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문양의 전개 원리와 드높은 상징성을 세계 처음으로 여러분과 함께 밝히고 있다. <상감기법>은 고려청자 이래 조선시대 분청자기에 이르도록 500년간 지속된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문양 표현법이다. 그런데 조선 분청자기 상감 항아리들은 엄격한 좌우대칭도 아니요, 정교하지도 않으나 색이 쑥색이고 문양이 자유분방하고 대담하여 고려 상감에서 맛보지 못하는 매력이 있다. 말 그대로 구수한 맛이 있으며 질박하여 조선의 멋이 흠뻑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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