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면상감 영화문 편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13.도 1-1. 백토분장 박지 영화문=보주문 편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13.
​도 1-1. 백토분장 박지 영화문=보주문 편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13.

 

문양을 알기 쉽게 표현한 상감기법

귀얄문을 바탕으로 문양이 영기화생

도자기는 모든 장르의 어머니격

‘조선적인 가장 조선적인 백토분장 회청자’라고 앞서 찬탄했으나, 청회자(靑灰磁)를 계속하여 분석하다 보니 조선을 넘어서서 가장 한국적인 자기임을 알게 되었다.

‘작품을 분석한다’는 말을 처음 들을 것이다. 세계에 수백만 도자기 전공자들이 있지만, 필자처럼 문양을 분석한 적은 없다. 흔히 작품을 감상한다고 말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무엇을 감상한단 말인가. 거듭 강조하거니와 도자기에서 모두가 지나치는 문양이 오히려 주체가 됨을 알아 문양을 분석해왔다.

왜 분석하는가. 대체로 도자기들은 전체적으로 한두 가지 색이어서 문양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필자는 세계 최초로 문양 연구에 성공하여 그 전개 과정과 상징, 그리고 사상을 밝혀오면서, 종래 도자기 연구가 주객이 전도되어왔음을 알았고, 문양을 중시하게 되었으므로 세계 도자기 연구가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그런데 문양은 ‘조형언어’이므로 문자언어에서처럼, 역시 처음과 끝이 있음도 알아냈다. 그 과정을 밝혀내는 ‘채색분석법’을 개발하여, 작품을 설명할 때 반드시 채색으로 분석하여 문양의 전개 원리와 상징 사상을 밝혀왔다. 그 결과 도자기의 발전과정을 보면 어떻게 하면 가장 중요한 문양을 돋보이게 할지 추구해온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도 알았다.

고려인들은 청자에 물론 문양이 없는 것도 만들었으나, 곧 음각이나 양각으로 문양을 나타내기 시작했지만 육안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결국 상감기법으로 문양을 알아보기 쉽게 표현하기에 성공했는데 세계 도자기 연구의 종주국인 중국도 아닌 한국에서 상감기법이 처음으로 문양을 돋보이게 하는 데 채택되었다는 것은 ‘세계 도자사’에서 특기할만하다.

단순히 금속기의 상감기법이 도자기에 채택되었다고 그렇다는 사실만 서술할 것이 아니라, 왜 그런 기법이 쓰였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문양의 중요성을 알지도 못했으므로 상감기법이 문양을 도드라지게 하는 뛰어난 방법이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왕조가 끝나고 조선왕조가 시작하자 단순히 백토로 분장했다기 보다는 도자기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즉 태토 위에 귀얄(넓고 굵은 붓)로 백토를 기세 좋게 칠하고 갖가지 방법으로 문양을 표현했다. 그런데 칠한 것이 아니고, 물레를 돌리며 성형할 때 그저 귀얄만 대면 태토 표면 위에 힘찬 속도로 귀얄무늬가 자연히 채색될 수밖에 없다. 바로 귀얄문 위에 갖가지 문양이 여러 가지 표현기법으로 두드러지게 된다.

귀얄무늬도 영기문임을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다룬 철화기법이나 박지기법은 그런 귀얄문을 바탕으로 문양이 영기화생하는 광경, 즉 갖가지 영화된 꽃 문양들이 표현되었음을 이 글을 쓰면서 처음 깨닫게되었다.

분장기법을 발생 순서에 따라 살펴보면 ① 우선 일정한 무늬를 도장과 같이 만들어 그릇 표면에 찍은 뒤 백토분장하는 인화기법(印花技法) ② 무늬를 선이나 면으로 파고 백토를 채워 넣은 상감기법(象嵌技法) ③ 백토분장을 하고 나서 음각선으로 나타내는 음각기법(陰刻技法) ④ 무늬의 배경을 긁어내어 하얀 무늬만을 남기는 박지기법(剝地技法) ⑤ 분장한 후에 철사안료(鐵砂顔料)로 그림을 그리는 철화기법(鐵畫技法) ⑥ 귀얄이라는 시문(施文)도구를 이용하여 백토분장하여 나타나는 귀얄기법 ⑦ 백토물에 그릇을 덤벙 넣어 분장하는 덤벙기법 등으로 발전한다.

도 1-2. 채색분석 (제공: 강우방 일햔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13.
도 1-2. 채색분석 (제공: 강우방 일햔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13.

도자기 전공자가 흔히 분청사기의 무늬로는 모란·모란잎·모란당초·연화·버들·국화·당초·인동·파초·물고기·어룡(魚龍)·화조무늬 등이며 그 밖에 나비·매화·빗방울·여의두(如意頭)·뇌문(雷文) 등도 있다고 모두 서술하면서 잘 못 알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백토분청면상감 영화문 편병’은 현재 일본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소장이지만 원래는 아타카(安宅)콜렉션이었다. 그 소장품에서 네 작품을 선정하여 분석하려고 한다. 이 글에서는 상감기법 중에서도 면상감기법(面象嵌技法)으로 영화(靈花)를 표현한 자기들을 다룰것인데 하는데 박

지 분청과 구별하기 어려워서 함께 다루어 논하고자 한다. 백토분장하지 않고 고려 상감기법을 계승한 조선 상감도 있는데 그 가운데 주목할 것이 <면상감기법>이다. 조선 초에 만들어진 그런 자기들은 박지분청과 비슷하여 한눈에 구별하기 어렵다. 백토 분장한 부분과 면 상감의 표면이 다르므로 자세히 살펴야 한다.

즉 박지기법의 경우 하얀 부분은 귀얄문으로 속도감 있는 문양이 보이나, 면상감의 경우에는 태토를 그대로 두고 영화 부분은 파내고 백토로 메꾸었기 때문에 박지기법에서처럼 기세 좋은 귀얄문이 보이지 않는다. 때때로 영화 주변을 검은 태토로 메꾸어 문양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도 한다.

그 좋은 예가 ‘백토분장 박지 영화문 편병’이다(도 1-1). 한눈에 면상감기법으로 만든 것 같지만 박지 분청이다. 백토를 귀얄로 두텁게 전체적으로 바르고 영화문을 그대로 두고 주변을 깎아낸 박지기법으로 만들었다. 영화 주변은 유난히 검은색을 띠고 있고 층위 차이가 없어서 검은 흙으로 메꾼 것처럼 보여서 한눈에 면상감기법처럼 보인다. 실물을 보지 못하여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없어서 양해를 구한다.

일본 학자는 모란문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채색분석해 보면 모란이 아님을 알 수 있다(도 1-2). 가운데 빨간색의 잎모양으로 변형시킨 보주이며, 녹색으로 칠하여 양쪽에서 감싼 것은 우리가 여러 번 논해온 보주의 여러 가지 표현 가운데 하나다.

그 밖의 것은 모두 제3영기싹과 제2영기싹을 잎모양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주로부터 발산하는강력한 영기문이다. 그 좌우로 선각한 영기문이 있다. 매우 멋진 대담한 문양으로 조선시대 백토분장 자기로는 백미라 할 수 있다.

도 2-1. 면상감 영화문 편병 (제공: 강우방 일햔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13
도 2-1. 면상감 영화문 편병 (제공: 강우방 일햔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13

다음은 면상감기법의 작품이다(도 2-1). 태토를 파내고 백토로 메꾸어서 표면에 귀얄무늬가 없다. 그러면 왜 분청사기라고 부르고 있을까. 아마도 태토와 유약이 일반적 분청사기와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저 ‘상감 영화문 청회색 편병’이라 불러야 한다. 이 작품 역시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채색분석해 보면 굵은 띠의 제3영기싹 영기문 안에 작은 무수한 보주들이 있고, 제3영기싹 영기문의 갈래 사이에서 나온 것은 보주를 상징하는데 그 이하의 넓은 면을 3개의 영화, 즉 영화는 큰 보주를 상징하므로 제3영기싹에서 나온 큰 보주들로 보아야 한다(도 2-2).

도 2-2. 채색분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13.
도 2-2. 채색분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13.

역시 앞 작품에서처럼 보주 양쪽으로 잎모양 제3영기싹이 발산하는 형상이다. 이에 이르러 고차원의 도자기의 상징를 설명하려니 매우 힘들고 숨이 가쁘다. 그래도 도자기의 위대한 조형을 이해할 것을 결코 포기하지 말자. 거기에서 다시 녹색의 잎모양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다.

도 3-1. 면상감 영화문 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13.
도 3-1. 면상감 영화문 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13.
도 3-2. 채색분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13.
도 3-2. 채색분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13.

세 번째 면상감 기법 작품이다. 각진 영기문이지만 곡선으로 그 전개 과정을 채색분석한 여백에 선으로 그려 보았다(도 3-1, 3-2). 태토를 파고 백토로 메꾼 전형적 면상감 기법으로 만든 병이다.

도 4-1. 면상감 영화문 합.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13.
도 4-1. 면상감 영화문 합.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13.
도 4-2. 채색분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13.
도 4-2. 채색분석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3.13.

네 번째 작품도 면상감 기법으로 만든 합이다. 전체적으로 영화를 연이어 만든 조형으로 역시 채색분석해 보아야 파악이 가능하다(도 4-1, 4-2). 뚜껑 중심에는 보주를 중심으로 보주가 확산하는 모양이지 연꽃이 아니다.

세계 도자기 연구의 종주국인 일본의 학자들 모두 문양에 대한 무지로 도자기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무엇인지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야 한다. 고차원의 상징을 지닌, 모든 장르의 어머니인 위대한 도자기를 한갓 그릇으로 폄하하고 있다.

조선시대 전반기의 자기는 세계 도자사에 볼 수 없는 가장 독특한 예술작품이다. 기형도 다양하거니와 표면에 베풀어진 문양들은 대담하고 활달하고 기세가 강해서 가히 한국 특유의 감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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