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구석기 이래 300만년 동안 이뤄진 조형예술품의 문양을 독자 개발한 ‘채색분석법’으로 해독한 세계 최초의 학자다. 고구려 옛 무덤 벽화를 해독하기 시작해 지금은 세계의 문화를 새롭게 밝혀나가고 있다. 남다른 관찰력과 통찰력을 통해 풀어내는 독창적인 조형언어의 세계를 천지일보가 단독 연재한다.

조선 초 15세기 인화문 분청자

그릇 표면 전체 보주문으로 표현

분청자 말기 16세기, 귀얄문 성행

조선 기백 살아 있는 독특한 문양

도 1. 인주문 장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06.
도 1. 인주문 장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06.

분청자의 모든 작품을 살펴보는 동안 조선 초기 15세기의 인화문과 말기 16세기의 귀얄문이 가장 감동적이다. 인화문 분청자는 이미 37회와 38회에서 몇 점 다루었으나 제48회에서 다시 2점을 다루고, 귀얄문 분청자를 4점 다루려 한다. ‘분청자’란 용어는 시행착오 끝에 윤용이 교수의 명칭을 따르기로 했다.

분청자의 초기를 장식하는 인화문 분청자는 그릇 표면 전체를 보주문으로 표현했다. 그 기법은 태토 표면을 둥근 원으로 압인하고 백토를 바른 후에 다시 표면을 긁어내면 무량한 보주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인화 기법에 대한 설명은 문제가 많다. 즉 ‘국화·나비·연판(蓮瓣)·여의두·연권문(連圈文) 등의 모양을 도장으로 찍은 뒤 백토로 분장하고 닦아내면 도장이 찍힌 부분에는 백토가 감입되어 흰 무늬가 이루어진다. 이것은 일종의 상감기법이다’라는 설명이다. 이런 문장에서 문양에 관한 명칭은 모두 그릇된 것이다. 여러 문양 명칭도 그릇된 것이고 백토가 감입되어 흰 무늬가 된다는 것과 반대로 둥근 원점은 태토색이고 그 밖의 표면은 흰 색으로 반대로 설명하고 있어서 충격적이다.

그리고 그릇 전면에 빼곡하게 인주문(印珠文)으로 장엄한 작품은 별도로 다뤄야 한다. 여기 소개하는 작품들(도 1, 도 2)은 장군과 자라병으로 전면에 빈틈없이 보주문을 압인한 것이어서 독특한 미감을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원점이라고 해도 보주는 어느 경우든 대우주의 기운을 압축한 것임을 알면 자기가 전혀 달리 보인다. 도자기의 개념이 달라진다.

도 2. 인주문 자라병(편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06.
도 2. 인주문 자라병(편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06.

그런데 그릇 표면 전면에 작은 원형들은 매우 작은 보주를 상징하고 있음을 전공자들은 모르는 것 같다. 그릇 일체가 만병이고 보주라는 사상을 아직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표면의 인화문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다른 문양들 가운데 보주문(寶珠文)에 한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인화문은 기법상의 용어다. 그 무량한 보주가 바로 항아리나 병이나 사발에 ‘가득 찬’ 상태(그래서 만병(滿甁)이라 부르는 것이다)를 나타낸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도자기를 드높은 사상적 차원으로 들어 올리고 있다. 인화문 자기란 매우 독창적 자기를 탄생시키고 있지만, 학계에서는 고려 말 청자의 쇠퇴가 그대로 조선 초에 이어진다고 하여 그 위상을 폄하하고 있다. 그리고 또 꽃을 찍은 것이 아닌데 인화문(印花文)이란 아무 의미가 없는 용어를 쓰고 있으니 그 가치를 잃고 있다. 최고의 가치를 최하의 무가치한 것으로 추락시키고 있다.

보주(寶珠)란 용어에서 주체가 되는 주(珠)를 택하여 문양 이름을 ‘인주문(印珠文)’이라 부르기로 한다. 그렇게 인식하면 인주문 분청자는 고려청자의 연장선상에서 두지 않고 한국 특유의 독자적 자기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천하제일 고려청자는 청자에 쓰일 흙이 나는 강진이나 부안에 있으므로 그곳들에서 만들어 개경으로 뱃길로 올려서 궁중과 높은 사대부에게 쓰였다.

이에 비해 분청자는 전국 어디서든지 만들었으므로 태토가 짙은 회색인 쑥색이어서 그런 칙칙한 태토를 감추려고 백토로 전체를 바른 후에 여러 가지 기법으로 문양을 냈다. 그런 초기에 인주문이란 기법으로 보주문 부분에서만 태토가 드러나고 나머지 부분은 백토여서 전체적으로 흰 느낌이 나지만 그 사이에서 태토의 쑥색이 은은히 살아나 지극히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무량한 보주라는 절대적 진리를 전해 주어 장엄하기까지 하다. 흔히 도장처럼 찍는다고 해서 쉬운 줄 알지만, 전체적으로 일정한 질서를 갖추도록 찍는다는 것은 세심한 배려가 따른다.

도 7. 귀얄 솔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천지일보 2023.04.06.
도 7. 귀얄 솔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천지일보 2023.04.06.

분청자 말기 16세기에 이르면 귀얄문이 성행한다. 귀얄이란 것은 넓적한 솔을 가리킨다(도 7). 그 넓적한 솔을 마치 붓처럼 써서 역시 전체적으로 흰색을 띤다. 그래서 넓은 붓 자국의 폭으로 귀얄의 폭도 가늠할 수 있다. 귀얄문 분청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백자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즉 귀얄문은 전체가 백색이어서 백자를 닮으려 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흔히 분청자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사이의 과도기적 자기라 하지만 이런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 3-1. 귀얄문-음각문 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06.
도 3-1. 귀얄문-음각문 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06.
도 3-2. 다른 면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06.
도 3-2. 다른 면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06.
도 4. 귀얄문-음각문 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06.
도 4. 귀얄문-음각문 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06.

백자를 우월하게 보아서 귀얄문을 폄하하기도 하지만, 귀얄문 역시 엄청난 문양이다. 즉 귀얄문은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조선의 기백이 살아 있는 독특한 문양이다. 귀얄 솔 자국이 마치 큰 붓으로 나타낸 그야말로 기운 생동한 문양을 띠어 역시 독자적 가치를 획득한 기법임을 잊지 말자. 귀얄 문양을 바탕으로 하여 그 위에 영기문을 기세 좋게 음각하여 독자적 자기를 탄생시키고 있다. 모란문이 아니라 보주를 품은 영화(靈花)와 영엽(靈葉)으로 구성되어 있다(도 3, 4). 이런 문양은 나의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 이런 귀얄문과 음각문이 어울린 자기를 한국 도자사의 극치라 생각하고 있다.

도 5. 귀얄문 장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06.
도 5. 귀얄문 장군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06.
도 6. 귀얄문 편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06.
도 6. 귀얄문 편병 (제공: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천지일보 2023.04.06.

그리고 순수하게 귀얄문으로만 문양을 구성한 작품을 보기로 하자. 장군의 전면을 한 방향으로만 기세 좋게 나타낸 귀얄문 자기가 있다(도 5). 그런가 하면 편병 전면에 귀얄문을 방향을 바꾸어 귀얄문을 구성한 경우가 있다(도 6, 리움미술관 소장). 이런 기세와 호쾌한 구성이 보이는 작품은 세계의 어느 예술가도 접근하기 어려운 걸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위대한 작품이다. 이처럼 분청자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사이의 과도기 양식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독창적인,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자기를 창출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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