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인사권자의 솜씨에 좌우되기는 하지만 정부 인사(人事)에 불평이 안 따라 붙기는 어렵다. 그것은 선거로 정권이 뒤바뀌고 연장되기도 하는 민주주의 속성상 그러하다. 우선 정부 고위직 인사의 경우 대통령은 자신의 당선을 도운 자기 진영 사람들이나 우호 세력에 드는 사람들을 먼저 챙기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이들을 제쳐두고 자신에 대항하는 야당 인사들이나, 야당과 가까운 비우호적인 세력에서 애써 사람을 고르려 한다면 그것은 자기 기반을 저버리는 일과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만약 대통령이 양강(兩强) 구도로 치러진 백중한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당선돼 그 비율대로 집권 기간 그와 그의 정책에 대한 선호도를 반영한다면 그가 하는 인사 역시 항상 거의 국민 반반의 찬성과 반대를 그 기저에 깔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비집권 및 비우호 세력이 제외된 대통령 인사의 ‘인재 풀(pool)’은 전국의 인재로 가득 찬 찰랑찰랑한 ‘인재의 연못’이 아니라 결코 넘칠 염려가 없는, 반이나 채워지면 잘 채워지는 연못에 불과하기 쉽다. 하긴 오늘날과 같은 이른바 ‘스펙(spec)’ 시대에 눈을 현란하게 하는 ‘스펙’으로 무장한 인재들이 비록 절반밖에는 채워지지 않았다 해도 그 ‘인재의 연못’에 우글거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인재를 찾아 쓰기에는 부족할 것이 없다.

다만 그 속에서라도 인사권자와의 친소(親疏)관계를 따지지 말고 권력의 핵심(core)에서 좀 멀리 있거나 변방에 있더라도 학연 지연 등 무슨 인연에 관계없이 고르고 넓게 골라 쓸 때에 그처럼 부족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정도의 인사 효과를 보여줄 정도만큼이라도 정권 태생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인재 풀’이 그나마도 제대로 충분히 활용되고 있지 못하다. 제한된 ‘인재 풀’이라고는 하지만 그 속에도 인재도 많고 그 인재를 보낼 자리도 많다. 그런데도 인사는 언제나 소수 핵심 세력의 축제로 끝나버리기 마련이었다. ‘혹시나’ 하는 국민의 기대는 번번이 빗나갔다. 따라서 ‘인재 풀이 좁다’는 잘못한 인사의 변명은 원천적으로 말이 안 되는 핑계인 것이 명백하다.

‘인사가 만사(萬事)’라는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 경영은 그것과 관련한 온갖 기구와 제도, 시스템, 사람을 유기적으로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 등의 일이지만 그것을 궁극적으로 움직이는 주체는 인사로 발탁해 쓰는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가 경영의 틀인 하드웨어(hardwear)를 올바르고 효율적으로 국가 목적에 맞게 움직이는 정신과 소프트웨어(softwear)는 어디까지나 사람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사는 국가 경영의 만사가 될 만큼 중요하다는 말이 회자된다. 뿐만 아니라 인사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되는 최고의 소통(疏通) 수단이자 동시에 인사권자가 보여주는 소통의 진정성에 대한 가장 중요하고 정직한 징표다. 이질적인 정파들이 권력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는 민주주의가 유지되는 것은 ‘소통의 힘’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사를 잘함으로써 국민을 감동시키는 집권자는 공허한 말로써가 아니라 바로 인사라는 ‘실천’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고양하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며 굳이 피아진영을 가리지 않는 진정한 국민통합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된다. 그런데 그 같은 멋진 인사가 언제 한 번이라도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일이 있었던지 좀처럼 기억해낼 수가 없다. 도리어 그 반대였다. 집권자가 임기 말로 접어들어 힘이 빠져가는 순간, 등용범위는 더욱 측근으로 좁혀지며 그 속에서 뽑아든 인물에 대해 ‘왜 하필 그 사람이어냐 하느냐’라는 국민의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일이 되풀이돼 왔다.

고대 중국 진나라 목공 때 손양(孫陽)이라는 명마(名馬), 준마(駿馬)를 한눈에 알아보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다른 이름은 중국 전설에서 천리마를 관장하는 신(神)이기도 한 ‘백락(伯樂)’이었다. 그가 하루는 소금수레를 끌고 힘들게 언덕을 오르는 늙고 노쇠한 말이 천리마(千里馬)인 것을 한눈에 알아보고 몹시 애처로워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그 천리마에 자신의 비단 옷을 덮어주는 것으로 다소라도 마음을 달래었다. 그런데 그 말이 천리마인 것은 그 말에 기껏 소금수레를 끌게 한 무식한 마주나 마부는 몰랐으며 오로지 백락의 눈에 뜨임으로써 비로소 천리마로 드러나게 됐다. 그래서 이로부터 생긴 고사가 있다. ‘백락이니까 소금수레를 끄는 천리마를 한눈에 알아보았다’는 뜻의 ‘伯樂一顧 驥服鹽車/백락일고 기복염거’가 그것이다. 인사도 이와 같다. 천리마와 같은 인재를 알아보는 명철(明哲)한 눈을 가진 인사권자여야 인사를 잘할 수 있다. 그 같은 밝은 눈을 갖고서 피아진영을 떠나 널리 인재를 구한다면 더 말할 것이 없이 금상첨화다. 제한된 ‘인재 풀’일망정 ‘백락’과 같은 눈으로 사람을 찾는다면 실패할 리가 없는 인사일 것이다. 

이런 얘기도 있다. 준마를 시장에 팔려고 내놓았으나 사람들이 준마인 줄 모르고 사가려 하질 않았다. 그래서 ‘백락’에 부탁해 그가 시장에 나와 사람들이 준마인 것을 눈치챌 수 있도록 그 말에 관심 있게 눈길을 보내 주도록 했다. 그랬더니 그 말 값이 즉시 10배로 뛰었다. 이로부터 생긴 고사로 ‘명사가 한 번 왕림해 돌아봐 준 것만으로도 영광스럽다’는 뜻의 ‘一顧之榮/일고지영’과 ‘명사가 한 번 바라봐 준 것만으로도 가치를 높였다’는 ‘一考價增/일고가증’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러니까 비록 항우가 탔던 오추마(烏騅馬)나 관우가 탄 적토마(赤土馬)라 할지라도 백락과 같은 사람이 있어 천리마인 것을 알아보고 그 적성대로 부리지 않으면 소금수레를 끌 수밖에 없다. 인사가 그렇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사권자의 눈은 백락과 같아야 한다. 한편 그런 공복을 뽑는 선거권은 국민이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국민이 백락과 같은 눈과 판단력을 가질 때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인사가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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