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사람이 전지전능(全知全能)할 수는 없다. 그래도 자신의 삶과 직분 수행을 위해 꼭 알아야할 필수 지식은 알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 일본의 재무장을 위해 사력을 다해 뛰는 일본 수상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그 같은 필수 역사지식에서 의외의 ‘무식(無識)’을 드러내 망신을 샀다. 그들의 정치 시스템의 핵심이 의원내각제여서인지는 몰라도 일본에는 집권당 당수인 수상과 야당 당수들이 국회에서 현안 토론으로 맞붙는 ‘당수토론(黨首討論)’이라는 것이 있다. 그 자리에서 아베는 한 야당 당수가 그의 잘못된 역사의식과 그로부터 출발한 잘못된 시책들을 질타하기 위해 던진 예리한 질문의 함정을 벗어나려 애쓰다가 필수 역사 지식의 ‘무식’만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렇다. 일본 공산당 대표 시이 가즈오(志位和夫)가 아베에게 “일본이 잘못된 전쟁을 벌였다고 명기한 포츠담 선언을 인정하느냐”고 물었다. 원래 아베는 곤란한 질문이 던져질 때 요리저리 질문의 요지를 피해 얄밉게 빠져나가는 빤질빤질하고 능숙한 솜씨를 곧잘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때도 이리저리 빠져나가려 했지만 이날만은 너무도 집요한 추궁에 잘 잡히지 않던 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그렇다고 아베가 그의 ‘무식’을 솔직하고 시원시원하게 인정한 것은 아니며 ‘껄쩍지근한’ 여운을 여전히 남겨 놓았다. 아베는 말하기를 “아직 그 부분을 꼼꼼히 읽지 않아 논평을 보류하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의 말인즉, 어디까지나 ‘꼼꼼히 읽지 않았다는 것이지 전혀 읽지 않아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한 자락을 깔았다.

이처럼 아베를 괴롭힌 시이 가즈오 대표는 그 다음 날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당수토론 후 아베 총리의 과거 발언을 죽 살펴보았더니 전에도 포츠담 선언에 대해 잘못된 사실을 말한 적이 있다”면서 “아베 총리가 둘러대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안 읽은 것 같더라”고 했다. 아베는 2005년 한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포츠담 선언은 미국이 원폭을 투하해 일본에 참상(慘狀)을 안긴 뒤 ‘어떠냐’고 일본에 내민 것”이라며 역사적 사건 발생에 관해 황당한 순서 착오를 일으켰다. 정확한 것은 연합국이 포츠담 선언(Potsdam Conference)을 통해 일본에 최후로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지만 그들이 이에 응하지 않자 원폭을 투하한 것이 정확한 순서다. 그렇지만 아베는 원폭을 터트린 뒤 포츠담 선언을 들이민 것으로 거꾸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참의원을 지낸 정치학자인 마쓰이 고지(松井孝治) 게이오대학 교수도 “아베는 ‘포츠담 선언도 읽지 않고 전후(前後) 체제 탈피를 말하는 총리’라는 딱지(label)가 붙고 말았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무식’이 약(藥)이 될 때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말과 맥이 통하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도 흔히 쓰인다. 아베가 그들의 과거 죄행인 침략전쟁 역사를 세탁하려하고 혈안이 된 나머지 산 증인들이 있음에도 성노예 강제징발을 부인하며 이웃 나라들과 세계가 우려하는 군국주의 부활을 위해 용감하게 뛰고 있는 것이 다 그 ‘무식’에서 에너지를 얻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포츠담 선언은 1945년 7월 26일 미국의 트루만(Harry S. Truman) 대통령과 영국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수상, 중국의 장제스(Chiang Kai-Shek) 등 세 나라 정상이 독일 베를린 교외의 포츠담에서 가진 정상회담이다. 이들은 이 회담에서 모두 13개 항목에 합의하고 이를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세계 인류와 일본 국민에 지은 죄를 뉘우치고 이 선언을 즉각 수락하고 무조건 항복하라’는 것과 한국의 독립을 보장키로 한 1943년 11월의 카이로 선언을 이행하겠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포츠담 선언을 발표한 포츠담 회담은 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이루어진 강대국 정상회담 중 전쟁 막바지에 최후로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기 위해 열린 주요국 정상회담이다.

하지만 일본이 이 같은 연합국의 요구를 따르지 않자 미국은 얼마 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 리틀보이(Little boy)를,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팻 맨(Fat man)을 투하해 8월 15일 일본 왕 히로히토의 항복 선언을 받아낸다. 히로히토는 항복 선언에서 “…적(敵)은 새로이 잔인한 폭탄으로 죄 없는 백성들을 끊임없이 죽이니 그 참혹함은 참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하는 것은 결국 우리 민족의 멸망을 불러올 뿐 아니라 인류 문명 또한 부수어 버릴 것이다. …바야흐로 짐(朕)의 제국정부로서 ‘공동성명(共同聲明)’에 응하도록 명하게 되기에 이르렀다”고 항복을 발표했다. 바로 이 대목이다. 히로히토가 말한 ‘공동성명’은 포츠담 선언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을 히로히토가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일본이 공동성명을 받아들이고 항복함으로써 전후 질서가 탄생된 것이지만 아베는 그 배경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렇게 앞뒤 안 가리고 역사부정주의와 일본의 재무장을 위해 막나가는 만용을 부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날 망신을 당한 후 아베는 관저에 가 포츠담 선언 구절을 꼼꼼히 챙겨 읽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랬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억지소리와 코미디 같은 짓을 해왔는지 깨달았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좀 달라질까? 예컨대 독도도 일본 땅이라고 하는 망발도 좀 삼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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