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미국은 세계 문제에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강대국이기 때문에 동북아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좀 더 분명한 입장을 취해 줘야 한다. 그래야만 극우 입장에서 역사를 세탁하고 수정하려 함으로써 부질없이 이웃나라들과의 갈등을 키워가는 일본의 아베 수상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망동(妄動)이 제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금처럼 일본의 아베가 우러러 볼 만큼 국제 정치 역학적으로 강하고 우월한 한 일본은 미국의 말을 거역하지 못한다. 그것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교활한 속성이며 이중성이라는 것은 우리가 체험한 역사적 과거로서 충분히 입증이 되고도 남는다.

미 국무부의 대니얼 러셀 차관보라는 사람이 최근 미 상원 청문회에서 “일본은 미국이 1972년 오키나와를 반환한 이후 센카쿠 열도의 행정권을 갖고 있다”며 “미국은 동중국해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어떠한 행위도 강력하게 좌절시킬 것”이라고 명확하게 미국의 입장을 밝혔다. 중국에 대한 직설적인 경고였다. 통상 껄끄러운 이슈에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로 일관하거나 물인지 막걸리인지 모를 모호한 외교적 수사를 남발하던 미국이 참으로 오랜만에 보인 명확한 태도다. 미국이 진즉 이 같은 명확한 태도와 원칙을 가지고 역사 문제로 이웃들을 열받게 하고 상처를 덧내는 일본을 강하게 제어해 왔더라면 아무리 못 말릴 만큼 막나가는 아베라도 지금처럼 형편없이 몰이성적으로 멀리 탈선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일본은 자신들의 미래 세대를 가르치는 교과서에까지 독도가 한국이 강점하고 있는 일본 영토라고 기술한 거짓 역사를 학습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과 중국이 아무리 강하게 이에 항의하고 그것이 미래에 어떤 불행을 초래할 것인지에 대해 경고해도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이 귀를 막고 하는 짓은 마치 압록강 너머 광활한 대륙을 누비던 우리 고대 역사의 뿌리를 지우려하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같이 한국 땅 독도를 강탈하려는 ‘독도공정(獨島工程)’ 내지 ‘독도공작’을 뻔뻔하고 음험하게 그들 나름의 계획표대로 순서를 밟아 집요하게 진행해 나간다. 미국은 이를 방관한다. 최근에는 하도 일본의 사대주의적 조공(朝貢)과 같은 로비(lobby)와 교묘한 외교적 프로파간다(propaganda)가 워싱턴에서 극성을 부린 나머지 그것이 효험을 발휘해 은근히 일본 편을 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미국은 절대로 일본의 망동에 방관하는 입장을 취하거나 은근히 일본 편을 들 입장에 있지 않다. 미국은 센카쿠 문제에서 명확하게 일본 편을 들어주고 있듯이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한국 영토라고 밝혀줘야 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일본은 1945년 미국에 패전함으로써 그들이 불법 강점하고 있던 한반도와 한국의 영토인 부속도서를 원주인인 한국에 온전히 되돌려주고 그들 나라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일본은 독도를 1905년 저들의 행정구역으로 편입했으므로 저희 땅이라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편다. 이 같은 강변마저도 1945년 그들이 미국에 의한 ‘원인 소멸’적 패전을 당함으로써 설 자리가 없어졌다.

그럼에도 미국은 독도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가르마를 타 주기는커녕 꿀 먹은 벙어리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일본군을 몰아낼 때 독도를 일본에 떼어준 것도 아닐 텐데 저렇게 아리송한 자세(stance)를 취하는 것은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진실을 말해야 할 때, 또 진실을 말해줘야 할 때, 입을 다무는 것은 거짓을 옹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미국이 초강대국으로서 공정하려면, 적어도 국제 질서의 주도자로서 공정하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센카쿠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하듯이 독도에 대해서도 한국 영토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혀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이 바라는 진정한 한미일 안보협력과 한일 우호관계 및 한미 동맹 관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긴요하다.

한미일 삼각 안보 협력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 중요성만을 내세워 일본의 진솔한 뉘우침이 없는 과거의 침략 전쟁과 수탈, 학살, 성노예 강제 징발과 같은 쓰리고 아픈 역사적 감정과 마음의 외상(trauma)을 대충 덮고 갈 수는 없다. 이것을 미국이 한국을 향해 무리하게 압박하거나 재촉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미국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입장을 일본에 촉구하는 것은 결코 사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내정간섭도 될 수 없다. 동시에 미국은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와 군국주의 부활에 제동을 걸며 독일이 나치의 죄행에 대해 그렇게 했듯이 역시 과거의 침략 전쟁과 그와 관련 죄행에 대해 이웃 나라들과 세계가 납득할 만한 수준의 사과를 하도록 하는 것 역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아베의 역사 수정주의와 성노예 강제 징발에 대한 부인을 성토하는 세계 석학들이 숫자를 더해간다. 비단 석학들뿐만이 아니다. 석학들을 포함해서 아베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는 것을 미국은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미국은 오히려 아베를 감싸고돈다는 느낌을 준다. 그렇게 해서 미국이 얻을 것이 뭔가. 한국을 방문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외교적 수사에도 일본을 향한 결자해지의 주문은 없었다. 역사 문제에 관한 한 그저 물도 아니고 막걸리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일본을 감싼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것의 반작용은 일본에 의한 미국 이미지의 오염이다. 아베는 자신과 일본만 망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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