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영국의 최근 총선이 재미있었다. 남의 나라 선거를 눈여겨보는 것은 결코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내 나라 선거를 잘 치르는 데 좋은 참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 650명의 의원을 뽑는 영국의 총선이 박빙으로 본 승부의 예상과 달리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이 이끄는 보수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보수당이 전체 의석의 과반을 넘긴 331석을 얻었다. 선거전에서 보수당과 호각세였던 에드 밀리밴드(Ed Miliband) 당수의 노동당은 보수당에 한참 뒤진 232석에 그쳤다. 돌풍의 주역 스코틀랜드독립당(SNP)은 56석, 그밖에 자유민주당이 8석, 영국극우당 1석, 기타 등으로 나타났다. 보수당과 선두 경합을 하던 노동당의 밀리밴드 당수를 비롯해 성적이 부진한 당 대표들은 이번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한국에서나 비슷한 풍경이다. 

이에 따라 보수당은 굳이 스코틀랜드독립당이나 종전에 연정(聯政) 파트너였던 자유민주당 등의 다른 당과 연합하지 않아도 단독으로 정권을 잡아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캐머런 당수는 선거 결과에 환호하며 바로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나 정부 구성에 대해 의례적인 보고를 ‘올렸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주목을 끈 것은 스코틀랜드의 59개 선거구 중 58개 구역을 휩쓴 스코틀랜드독립당의 돌풍, 깜짝 약진이다. 이것이 보수당의 완승, 노동당의 참패와 직결되는 돌발 변수였다. 스코틀랜드독립당은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운동의 중심체이며 실제로 분리 독립에 대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이끌었었다.

스코틀랜드는 전통적으로 노동당의 텃밭이었다. 그렇지만 스코틀랜드에 팽배한 분리 독립을 향한 스코틀랜드 민족감정, 지역 소외감이 급격한 표심의 변화와 스코틀랜드독립당으로의 쏠림을 가져왔다. 그것은 말하자면 분리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에서 좌절을 맛본 주민들이 그것을 대신해 취한 ‘대상(代償/substitution)’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스코틀랜드독립당은 한국의 옛 지역정당, 즉 충청지역을 기반으로 한 ‘자민련(自民聯)’의 영국판으로서 손색이 전혀 없다. 주민들과 스코틀랜드독립당의 니콜라 스터전 당수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망설임 없이 ‘역사적인 변화’라고 규정한다.

동시에 ‘우리는 영국 정치권의 중심에서 더 많은 진보적인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영국 전역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노력해왔다’고 말한다. 그 말이 시사해주듯이 그들은 확실히 이제 영국 의회 정치에서 소외감을 덜 갖고 스코틀랜드 주민들의 정치적 의사와 권익을 지켜내기에 충분한 ‘캐스팅 보트(casting vote)’ 가까운 정치적 기반을 의회에서 가질 수 있게 됐다. 노동담의 참패는 이 같은 스코틀랜드 주민들의 표심 변화, 다시 말해 전국 정당인 노동당 의존에서 벗어나 직접적인 지역 기반의 주민 ‘자결적(自決的)’인 정당을 갖고자 하는 주민 의지의 발현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스코틀랜드독립당의 약진은 그들이 아직 그것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으나 분리 독립 운동을 다시 불타오르게 하고 주도하지나 않을까 보수적인 영국인들은 걱정한다. 

노동당은 이렇게 스코틀랜드를 잃어 버렸다. 이와 함께 한편으로는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이나 그 기운이 고조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 주민들 속에 판세를 관망하며 말없이 숨어있던 보수당 지지표가 막판에 보수당으로 결집함으로써 보수당은 완승할 수 있었다. 스코틀랜드독립당의 약진이 스코틀랜드 민족주의 때문이었다면 보수당의 압승은 영국민족주의 때문이었다고 분석된다. 캐머런은 이를 이용해 2017년까지 영국 내정에 과도하게 관여하고 동유럽이민자들의 유입을 제지할 수 없게 하는 영국의 EU 탈퇴를 결정짓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었다. 그것이 그리스의 EU 탈퇴 가능성을 말하는  ‘그렉시트(Grexit/Greek exit)’와 함께 유럽을 긴장시키고 있는 영국의 EU 탈퇴, ‘브렉시트(Brexit/British exit)’에 관한 우려(risk)다.

보수당의 총선 압승은 불과 선거 하루 전 여론조사와도 너무나 딴판인 선거 결과였다. 선거 직후 출구조사가 현재와 같은 선거 결과를 비슷하게 맞추어 보수당의 압승을 예고하자 그마저 믿을 수 없다고 외면하는 분위기였다. 이때까지도 양대 정당인 보수당과 노동당이 막상막하의 성적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했을 뿐이다. 이래서 선거 후 영국 의회가 ‘절대다수당이 없는 의회’, 영어로 바로 그 같은 뜻의 ‘헝 팔러먼트(hung parliament)’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얻었었다. ‘hung’이라는 어휘가 수식하는 ‘hung parliament’는 ‘hung’의 뜻이 어구의 전체 의미를 지배해 의회에 주도 세력이 없는 상태에서 정당 간에 ‘의견이 갈리고 결론이 나지 않는 의회’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결과를 전반적으로 살필 때는 영국 국민들은 자신들을 위해 효율적으로 일해야 할 의회를 바보스럽게 의사 결정이 나오지 않는 불임(不姙) 의회로 만들어 놓치는 않았다. 어느 민주주의 나라이든지 의회에 주도 세력이 없을 때는 공통적으로 정치는 시끄럽고 국정은 질척거리며 국민은 혼란에 빠지고 민생은 힘들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이를 막고자 하는 표심과 함께 지난 5년간 집권을 통해 경제회복과 일자리 창출, 재정적자 축소, 특히 일자리 창출에서 큰 성과를 보인 보수당에 영국 국민들은 신뢰를 보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당의 부자증세와 복지 강화 등의 대중영합적인 공약에도 도리어 복지 축소를 외친 캐머런의 손을 영국 국민들은 들어주었다. 경제 활성화 없이는 국민 복지도 없다는 것은 그들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보수당은 재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커다란 ‘숙제’를 다시 떠안았음을 의미한다. 돌고 도는 세상에서 그들은 또 승리할 것인가. 선거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꼭 감촉이 가능한 민의(民意)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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