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속담이 말해주듯이 사람 사이가 뭐 그런 것 아닌가. 또 쌈밥을 만들어 먹을 상추 밭에 미운 짓을 하고서도 주인이 좋아 꼬리를 설레설레 흔드는 개에게는 차갑게 발길질하기 어려운 법이다. 이것이 세상이 되돌릴 수 없는 냉혹한 인과관계나 인과응보적 체계로만 돌아가지 않는 이치이다. 국가 사이도 그렇다고 봐진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맹방이 되고 오늘의 맹방이 곧 적이 될 수도 있다. 국가도 결국은 사람의지로 움직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런 정도의 변덕이나 가변성, 유연성이 발휘될 수 있는 것 같다.

일본 수상 아베(安倍晋三)는 미국을 향해 어지간히도 끈덕지게 간지러운 미소를 보내면서 살살 꼬리를 흔들어대 왔다. 냉정한 입장에서 볼 때는 몸에 닭살이 돋을 지경이었지만 남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오로지 미국과 눈을 맞추고 미국의 눈에 들기 위해 그의 일에 몰입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얻은 수확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미 일 정상회담이며 미국에 대한 국빈 방문이고 미국 상하 양원 합동 의회에서의 연설이었다. 이렇게 나름 힘들게 얻은 성과에 대해 아베 스스로도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인 것을 확인하고 만족해했을 수 있다. 미국은 아베를 최고의 예우로 환대했다. 거기다 아베가 함박웃음을 웃을 만큼 선물을 듬뿍 안긴 것을 보면 오바마와 미국의 조야가 아베의 기만적이고 술수적인 미소와 재간에 감동해버린 것이 분명하다. 아니면 사실 미국은 준 것보다 받은 게 훨씬 커 손해난 장사가 아니므로 감동한 척 해준 것인지도 모른다.

오바마는 아베를 백악관에서 맞으면서 “여기서 1960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사 노부스케(岸信介) 총리를 영접했었다”는 말로 입을 열어 외할아버지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는 아베의 기분을 한껏 북돋웠다. 정상회담 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서로를 위해서’라는 뜻의 일본어 ‘오타가이노 타메니’라는 말을 던지면서 “서로를 위하는 것은 동맹 관계의 본질이며 미국과 일본은 그 같은 글로벌 파트너”라고 했다. 이 말을 일본 국영 NHK TV는 아베의 방미 성과를 상징하는 자랑스러운 핵심인 듯 반복해 방영했다.

이런 정도는 립 서비스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언중무골(言中無骨)만은 아니다. 마치 누구 들으라는 듯이 이렇게도 말했다. “아베 총리가 알링턴 국립묘지에 헌화한 것은 과거는 극복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준 것”이라고-. 이는 아베가 이웃 나라는 물론 세계 도처에서 얻어맞고 비난받는 진정한 사죄와 반성, 올바른 역사 인식을 결여한 과거사 인식 문제와 관련해 ‘왕따가 된 아베 구하기’와 다름없는 소리다. 아베를 배려하려다 하마터면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뜨거운 비난을 살 뻔한 위험 수위의 아슬아슬한 발언이었다. 미일 동맹도 중요하지만 한미 동맹도 변함없이 중요하고 미국 일본이 경계심을 발동하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도 여전히 중요한 마당에 오바마의 말은 하마터면 ‘OB(Out of Bounds)’를 낼 뻔했다.

세상은 명확히 ‘기브 앤 테이크(give_and_take)’의 실리적 관계로 돌아간다. 특히나 국가 관계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아베가 미국에서 이렇게 최상의 대접을 받고 선물을 듬뿍 얻어 간 것은 그만큼 아베도 미국에 주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에서 받은 것은 오바마의 립 서비스를 비롯해 추상적인 것이지만 아베가 미국에 준 것은 주일미군 유지비 등의 현찰과 실체적인 것들을 중심으로 훨씬 더 많다고 봐야 한다. 군사·경제적으로 부상하는 중국에 대해 갖는 공포심으로 일본은 미국을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기 위해 아베는 미국에 많은 것을 바쳤다. 말하자면 사대 조공(事大 朝貢)외교다. 아베의 ‘신(新) 조공외교’라고나 할까. 미국으로서도 중국의 부상과 팽창에 경계심을 갖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서 두 나라가 새삼스럽게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 더구나 재정상태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 방대한 군사력을 유지하기가 벅찬 미국으로서는 현찰도 대고 미국과 미군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따라가 돕겠다고 자청하며 오히려 졸라대는 일본과 아베가 기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베는 미국으로부터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댜오위다오(센카쿠)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미군과 일체가 돼 움직이는 집단자위권의 행사 범위도 세계 전역, 우주, 사이버 공간으로까지 확장시켰다. 또한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는 언약도 받아낼 수 있었다.

오바마와 아베는 2차 대전 참전 세대가 아니며 그 전쟁의 참상에 대한 기억도 교과서에서 배운 것 말고는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당장의 실리에 이끌려 아베가 알링턴 묘지에 꽃 한 다발 바친 것을 높이 평가하면서 서로 싱겁게 용서하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모습에서 나라의 혼(魂)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제로부터 진주만 기습을 당해보고도 일본과 참혹한 전쟁을 치러보고서도 미국은 일본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물론 아베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도 이웃인 한국 중국에 비해 미국은 잘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워싱턴에 간 아베가 오바마와 ‘밀월(蜜月)’을 즐기는 모습을 시기할 것은 없지만 떨떠름한 것은 사실이다. 아베는 미 의회 연설에서 미일 동맹에 대해 ‘희망의 동맹’이라 말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베의 생각일 뿐이다. 오바마와 아베가 엮어낸 ‘업데이트(updated)’된 미일 신(新) 동맹은 희망보다는 동북아와 세계에 새로운 숙제와 복잡한 과제를 던져놓았다고 봐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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