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하늘의 의지가 인간사에 반영되는가는 종교철학의 핵심이다. ‘인력이 하늘을 극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과학의 요체이다. 고대 동양의 사상가들도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펼쳤다. 도가는 하늘의 의지를 부인하고 천도에 순응하자고 제안했다. 도가의 천도는 기계론적 세계관이다. 천도는 일정한 규율대로 끊임없이 가동되기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순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자연에 순응하는 인간의 행동은 억지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무위(無爲)’에 부합돼야 한다. 묵가는 유물론적 세계관과 하늘의 의지를 모두 인정했다. 그러나 하늘은 인간의 의지에 호응하는 작용에 국한된다. 묵자는 은주시대 이래 귀신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가는 ‘천명’을 믿었다. 공자는 ‘논어 안연’에서 생사는 명에 달렸고, 부귀는 하늘이 주관한다고 했으며, 위정에서는 50세에 비로소 천명을 알았다고 하여 숙명론을 인정했다. 맹자는 억지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이 ‘천’이요, 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명’이라고 말했다. 천명을 믿는 것은 하늘의 의지를 안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가의 순자는 처음으로 ‘천명’을 부정했다. 그는 천명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으며, 사람은 천명을 만들고 활용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의 노력이 하늘의 의지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갈량은 천명에 대해 순자의 유물론적 자연관을 계승했다. 융중에서 유비를 만난 그는 약자인 조조가 강자인 원소를 이긴 것은 천시가 아니라 사람의 계모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대부분 천명이 조조에게 돌아갔다고 떠들었지만, 제갈량은 조조라는 영걸의 개인적인 능력을 중시했다. 관도결전을 앞둔 조조가 망설이자 곽가는 필승요인 10가지를 제시하며 결단을 촉구했다. ‘인간의 계략’을 신뢰했던 조조는 원소를 깨뜨리고 중원의 패자가 됐다. 유비는 특별한 세력도 근거지도 없는 떠돌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인간의 계략으로 유에서 무를 창조할 수가 있으며,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강자인 조조도 타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맹목적인 낙관론만은 아니었다. 그는 객관적 형세를 치밀하게 관찰하고 거기에 주관적 아이디어와 결단을 더한 천하삼분지계를 확립했다.

유비가 오와의 전투에서 패한 후 사망하자 그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봉착했다. 위의 화흠, 왕랑, 진군 등이 편지를 보내 천명을 역설하며 항복을 촉구했다. 제갈량이 답장을 보냈다는 기록은 없지만, 정의(正議)라는 글을 통해 인간의 지혜가 천명을 극복한다고 주장하며 화흠의 무리를 반박했다. 그는 우선 항우와 유방의 사례를 들었다. “강대한 세력을 형성한 항우에게 천명이 돌아간 것 같았지만, 결국은 약세였던 유방에게 지고 말았다. 따라서 천명은 믿을 수 없는 것에 불과하다. 승패의 관건은 천명이나 객관적인 전력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이다. 원소와의 관도결전을 앞둔 조조도 승패를 알 수가 없어서 불안했지만, 곽가의 권고를 듣고 용기를 낸 조조가 이겼다는 사실을 그대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왕망은 유씨의 천하를 찬탈하고 새로운 왕조를 창건했다. 그는 하늘의 뜻을 강조하기 위해 부서를 만들어 천명이 자기에게 돌아왔음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왕망은 결국 유수에게 망했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주장하는 천명은 허위일 따름이다. 위도 결국 왕망처럼 망하고 말 것이다.”

제갈량이 지혜를 강조한 것에는 상하의 단결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의미도 있다. 그가 만 명이 필사의 각오로 전쟁에 임하면 천하를 누빌 수가 있다고 자신한 것은 북벌에 대한 내부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제갈량이 촉한의 군사를 이끌고 기산을 넘어 위나라를 공격했을 때 그들은 수비에 급급하여 자신을 보전하기에 바빴다. 하물며 5000만 국민이 무엇을 두려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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