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차 좀 빼주세요.”

며칠 전 일이다. 빌딩 1층 주차장에 주차하면 자주 듣는 말이지만, 필자의 승용차를 움직여 딴 차가 나갈 길을 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서둘러 뛰어 내려가 차량에 시동을 걸었다. 주차장 한쪽 편으로 차를 옮겨놓고 차가 빠져나가기를 잠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분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면 다시 그 자리에 주차하기 위해. 그런데 차를 빼달라고 부탁한 그 운전자는 마음이 많이 급했고 다소 부주의하기도 했다. 한 손에 담배까지 물고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자신의 차를 후진시키다 그만 ‘꽝’, 필자 차와 부딪쳐버린 것. 요즘말로 ‘심쿵’이었다. ‘앗’ 하는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했으면 아무 문제없이 출차할 수 있었을 텐데.

“좀, 조심하지 그래요.”

접촉사고 부위를 살펴보니 차 뒷범퍼가 한 일(一)자로 길게 긁혀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그런데 그때 이 사람이 툭 던진 말이 또 한 번 필자를 당황하게 했다. 그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봐 주세요.” 범퍼에만 좀 상처가 난 비교적 사소한 사고이니 그냥 넘어가자는 말이다. 당최 어이가 없다. “아니…” 그는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자신의 차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는 차를 몰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아니, 무슨… 피해 차량이 이렇게 보기 흉하게 긁혔는데….”

그는 당혹해하는 필자가 혼잣말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애써 외면하고 현장을 떠났다. 사실 필자가 피해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같은 빌딩에 사무실을 갖고 있어 오늘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와 필자는 자주 만날 것이다. 낯붉히는 일이 있으면 서로 불편해질 텐데. 경미한 접촉사고였지만, 멀쩡한 차를 긁혔으니 마음에 걸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솔직히 말한다면 원래대로 회복시켜 달라고, 범퍼 전체를 교체하지는 않더라도 표면에 살짝 페인트칠이라도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종일 찜찜했다.

저녁에는 공교롭게도 동병상련(同病相憐)에 처한 이웃도 만나게 됐다. 이날 퇴근길에 어두운 아파트 주차장에서 손전등을 켜고 주차 차량들을 일일이 살펴보는 아파트 주민 한 사람이 있었다. “얼마 전에 차를 새로 뽑았는데요. 누가 제 차 문짝을 심하게 긁어놓고 그냥 튀었어요.” “쯔쯔.” 저절로 탄식이 나와 잠시 얘기를 나눠보았다. 사실은 필자도 오늘 낮에 황당한 일이 있었다, 차를 ‘꽝’ 박아놓고는 미안하지만 봐 달라 하고는 휭하니 가버렸다고 했고, 그는 선생님은 저보다 나은 편 아닌가요,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못 들었으니라고. CCTV를 돌려서라도 뒤지면 가해자를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느냐, 하지만 같은 아파트 주민끼리 그렇게까지 해서야 되겠느냐…. 우리는 그런 대화를 나누다 쓴웃음을 지으며 헤어졌다. 한 동네에서 이웃사촌끼리니 참아야지, 더 이상 어쩌겠느냐고. 공동체 생활에서 모나게 실정법 규정만을 앞세워 싸울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하며. 물론 똑같은 사안에 오늘의 우리와 달리 목청 높여 싸우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누가 똑똑하고 누가 어리석은 것일까.

“지금 고객 문의 전화가 많사오니 나중에 다시 전화해주시기 바랍니다.”

짜증나는 일은 ARS 전화로 인해 또 발생했다. 전화와 인터넷 계약을 한 통신사에서 다른 통신사로 바꾸려 하는데 해제 요청 전화는 통화가 안 된다. 월요일이라 문의전화가 많아 그렇단다. 다음날 다시 전화하니 대기 고객이 열 한 명이라 무려 28분 20초를 기다리란다. ‘지금 모든 상담사가 통화중이오니…’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빠르고 간편하니…’라는 등 ARS 목소리만 똑같이 계속해 반복되더니 뚝 끊기고 만다. 어지간한 인내심으로는 전화 해제 신청을 할 수가 없다. 통화가 안 되니 따질래야 따질 수도 없다. 잡음과 분쟁이 이렇게 해서 생긴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범위를 넓혀 생각해보면 나라 사이의 갈등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와 국경을 접한 북한 중국 일본 등과 말이다. 좋은 거래도 있겠지만 어찌 마찰과 갈등도 없겠는가. 우리나라는 6·25 한국전쟁 때 개입한 미국 등으로부터 원조도 받았다. 하지만 짐작컨대 지금은 신무기 구입, 외교정책공조, 경제문제 등과 관련해 직간접적인 교섭과 압박이 많을 것이다. 지구촌의 엄혹한 경쟁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진 힘과 꾀를 다 발휘해 겨뤄야 한다. 하지만 모두 이웃사촌이다. 그리고 운명공동체다. 그래서 과거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는 합종연횡이 있었고 한국과 중국·대만 교섭사에서 보듯 외교엔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소원한 관계로 된 일화도 많다. 큰 인내심과 함께 과거 전례와 형식논리에 너무 얽매이지 않는 창의력과 융통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 간 모두. 지혜롭게 이웃과 잘 지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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