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속으로
김백겸(1953~ )

탑정호수가 바라보이는 ‘레이크 힐’에서 커피를 주문한다.
호수 너머 소나무들이 햇빛 속에 빛난다.
화분의 황국도 첫사랑처럼 피어있고
내 차가 멈춘 이유는 무섭게 가을의 적막 때문

세찬 바람과 어지러운 물결
불붙는 생각

[시평]
가을은 쓸쓸함과 단풍의 불붙는 듯한 치열함이 함께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가을은 더욱 처연한 적막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심코 길을 떠나다가, 앞에 펼쳐진 무서울 정도의 가을의 그 적막. 문득 그 적막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차를 멈추게 한다.
멈춘 자리에서 햇빛 속 빛나는 소나무와 같이 빛나던 지난날이 생각 키워지고, 이내 소담스럽게 핀 가을 황국(黃菊)을 보며, 쓸쓸한 기억 속의 아련한 첫사랑이 떠오른다. 아, 아 적막은 사람을 한번쯤 멈추어 서서 자신을, 아니 자신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로구나. 그래서 세찬 바람과 어지러운 물결을 바라보며 지난날의 생각으로 우리로 하여금 불붙게 하는구나.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커피숍에 앉아 한 잔의 씁쓸한 커피를 마시며, 적막과 불붙는 치열함이 함께하는 가을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 그리하여 잊어버렸던 지난날을 한번쯤 되돌아보는 것. 이 가을 더욱 처연해지리라.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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