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역
최문자(1943~ )

옛날에는 동쪽에서 그를 기다렸다.
난해한 책을 끼고 그가 내려오던 계단을 향해 서있었다
지금은 세상 전부가 서부
없어진 방향이 그리웠다
사랑의 절반은 반대 방향에서 기다리는 것
자작나무 숲길을 끝까지 걸어가도 못 만나는 것
피고도 남은 꽃 위 바람 어디쯤
한 번도 태우지 못한 생풀 타는 연기 오른다
매워서 잡지도 놓지도 못하고
눈물로 쓰라렸던 얼굴
지금은 서부역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시평]
동쪽과 서쪽은 어떻게 다른가. 동쪽은 해가 뜨는 곳이기 때문에 서쪽보다는 양지이고 또 사람들에게 선호의 대상이 되리라. 그래서 시인은 동쪽에서 ‘그’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그것도 난해한 책을 옆에 끼고, 그에게 자신의 고상함을 보이기 위하여. ‘그’라는 밝음의 시간을 기다렸으리라.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고 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어느 한 방향이 아니라, 이 세상의 반은 다른 방향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해가 뜨고 그래서 밝음이 있는 방향만이 정당한 곳이고 또 가야 할 곳이라고 생각을 했던 그 시절이, 이제는 결코 옳은 것이 아님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해가 지고, 그래서 어두움 속에서 모든 것들이 쓸쓸히 살아지는 그곳도, 실은 사람이 살고, 또 치열한 사랑도 있고, 아픈 사연도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나이가 들어서 비로소 알고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서부역에서 ‘그’를 기다린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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