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꽃

민 영(1934~ )
 

해질 무렵
장독대 옆 화단에
분꽃이 피면
이남박 들고 우물로 가던
그 여인이 보입니다.

육십년 전에
싸움터로 끌려가서 돌아오지 않은
정든 님을 기다리다가
파삭하게 늙어버린 우리 형수님
세월이 하 무정하여
눈물납니다.


[시평]
요즘 정원에서 우리의 오래된 꽃들이 사라진 지 오래이다. 어린 시절, 화단에는 채송화, 분꽃, 나팔꽃 등이 대종을 이루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러한 꽃들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한여름, 그것도 오후 늦어서나 피는 분꽃. 그래서 옛날 시계가 없던 시절에는 아낙네들이 이 분꽃이 필 때 저녁밥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장독대 옆 분꽃이 필 때면, 밥 짓기 위해 쌀을 이는 바가지인 이남박을 들고 쌀 이러 우물로 가던 여인. 전쟁터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는 신랑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밥을 지으며 살아 돌아올 신랑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올리는 그 마음으로 살아가신 형수 생각이 난다고 시인은 말한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파삭하게 늙어버린 그 형수 생각을 하면, 왜 그리 세월이 무정한고, 절로 눈물이 난다는 시인.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그래서 그저, 그저 지나가는 그 세월 얼마나 무정할꼬. 올 여름에도 해질녘이면 여지없이 분꽃이 필 텐데, 그 형수님 지금은 볼 수가 없어 더 생각이 나는 시인.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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