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는 생각 중
설용수
잠자리 한 마리
바위에 앉아
꼬리
바짝 치켜 올리고
바위를 들까?
지구를 들까?
[시평]
고추잠자리가 유독 많이 나와 날아다니면, 어른들은 말한다. 이제 더위도 머지않아 물러갈 것이고, 그리고 이내 가을이 올 것이라고. 그렇다, 가을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잠자리들은 가을 햇살 속 말라버린 식물의 대궁이나 바위 위에 앉아 꼬릴 바짝 치켜 올리고 앉아있다.
꼬리를 바짝 치켜 올리고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잠자리를 바라보며, 왜 저 잠자리는 저렇듯 정지한 채로 꼬리를 바짝 치켜들고 앉아 있는 것일까, 생각을 한다. 저 잠자리는 저 자세를 취하고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하! 자신이 매달려 있는 저 바위라도 들어올리려고 저렇듯 의미심장한 자세를 취하고 앉아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저 바위의 뿌리가 닿아 있는 지구라도 들어올리려고 저렇듯 꼬리를 바짝 치켜들고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일까.
가을 햇살 속, 문득 어느 길가에서 만난 작은 잠자리 한 마리. 시인이 만난 것은 실은 잠자리가 아니라, 잠자리의 생각이리라. 잠자리라는 아주 하찮은 미물이지만, 그의 마음을 만난다는 것. 어쩌면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길인지도 모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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