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요즘 KBS 2TV ‘개그콘서트’의 ‘렛잇비’ 코너가 인기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웃음으로 풀어내는 솜씨가 그만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어보았을 만한 상황들을 소재로 해 ‘폭풍 공감’하게 만든다. 직장생활 중 부닥치는 고충들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여러분 힘내요, 여러분 웃어요, 힘들고 지쳐도 웃어요”라는 마무리 대사가 위안을 안겨준다. 재밌고 따뜻한 개그다.

직장을 놀이공원이라 생각하며 즐겁게 일하려고 하는데 야근 명령이 떨어지는 바람에 ‘야간개장’이 되고, 프러포즈 한 번 받아 보지 못한 노처녀 사원에게 상사가 서류더미를 안겨주며 ‘프러포즈’를 한다. “사원을 먼저 생각하는 회사”라고 해서 입사했더니, “사장을 먼저 생각하는 회사”였다. 열심히 영어공부 해서 입사했지만 회사에서 써먹는 영어라고는 ‘A4’가 전부다.

개그 프로에서처럼,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일 자체보다 사람 때문에 힘든 경우가 많다. 생각과 행동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곳이다 보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권위적인 유교문화와 상하 위계를 중요시하는 군사문화가 잡탕으로 섞인 직장 분위기가 직장인들을 괴롭힌다. 아랫사람은 윗사람 눈치 보느라 힘들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으로부터 대접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한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권위에 손상이 간다 싶으면 속을 끓이며 아랫사람을 들들 볶기도 한다.

아랫사람은 윗사람 눈 밖에 나면 승진이나 보직 인사에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사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신세가 된다. 지문이 닳도록 아부를 하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하고, 쉼 없이 굽신거리고 머리를 조아린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며 비위를 맞출 줄 알아야 하고, 돌아서서 욕을 하고 흉을 보면서도 앞에서는 활짝 웃어 보이며 “딸랑 딸랑 사랑합니다!”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아무리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강조해도, 직장은 직장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는 있어도 가족은 아니다.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존중하고 대우받는 회사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모든 조직은 기본적으로 계급적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아랫사람, 윗사람이 지켜야 할 예의가 있어야 하고, 그것이 잘 지켜지는 회사가 잘 되는 회사임에는 틀림없다.

그럼에도 지나치면 모자라는 것보다 못한 법이다. 상사가 두 손 멀쩡한데도 달려가 자동차 문을 열어주어야 하고, 식당에 가서는 숟가락 젓가락 반듯하게 놓아주고 물 잔을 앞에 놓아 주어야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웃기는 짓이다. 상사가 다 먹었다고 일어서면, 숟가락질을 멈추고 덩달아 일어나야 하는 것도 웃기는 짓이다. 이런 웃기는 짓도, 따지고 보면, 위사람 탓이다. 웃기는 짓인 줄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당연히 대접받아야 할 것을 대접받는다고 생각하는 바보 같은 상사 때문인 것이다.

상사가 싫다고 직장을 그만 두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다. ‘진상’ 상사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극복해야 할 과제라 여겨야 한다. 아무튼, “여러분 힘내요, 여러분 웃어요, 힘들고 지쳐도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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