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철 한국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

 
한·중·일이 비슷하지만, 근원적으로 들어가 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국의 창덕궁은 자연미의 보고다. 중국과 일본은 같은 인위적인 문화를 만들어낸다. 중국은 힘의 과시를 과장되게 표현한다. 높고, 크고, 화려하게, 그리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 위압감을 가지게 한다. 일본은 정형미를 보여준다. 상하비례와 좌우대칭을 주축으로 한 일정한 원칙을 지키려는 의도가 강하다. 그래서 깔끔하고 정교하며 차가운 비장미가 흐른다.

우리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우선 중국과 일본의 인위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자연미가 주조를 이룬다. 궁궐의 높이가 중국과 일본의 경우보다 현저하게 낮다. 서양의 성도 보면 언덕 위에 짓거나 담의 높이가 우리의 궁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견고하다. 우리의 궁궐은 우리의 한옥마을에 가보면 담장이 없거나 있어도 편안하게 넘어다볼 수 있을 정도로 경계만을 표시한 정도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궁궐도 다른 나라의 경우와는 다르게 낮게 만들어져 있다.

창덕궁은 몇 가지 특성이 있다. 극히 한국적인 면만을 찾아보면 우선 자연지형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중축선을 신경 쓰지 않고 여러 개의 횡축을 이용해서 권위보다는 안락함을 추구하고 있다. 셋째는 난방방식의 확연한 차이다. 넷째는 후원의 활용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다. 첫째 자연지형을 건드리지 않고 자연지형을 기대서 궁궐을 건축했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자연과의 화합에 있다. 자연을 벗어나서 인간을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항상 중심과제였다. 자연 속에 인간이 사는 것이지 사람이 자연을 경영한다는 서구적인 생각과는 판이하다. 사람과 자연, 거기에는 동물과 식물에도 또한 산과 들, 바위 같은 것에까지 적용했다. 만물과 더불어 어울려 사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창덕궁은 창경궁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강제로 담을 쌓기 전까지는 창덕궁과 창경궁은 담이 없는 하나의 궁이었다. 궁은 하나이면서 두 개의 궁인 것처럼 꾸며진 것이 창덕궁과 창경궁이다. 조선시대에는 동궁이라고 해서 하나의 궁으로 인식했다.

둘째는 중축선을 어기고 횡축(가로축)으로 건축물을 배열하고 있다는 점이다. 창덕궁은 궁궐의 기본인 중축선을 따르지 않고 횡축으로 건축물을 연장해갔다. 정문은 돈화문이 남서쪽을 향하고 있지만 들어가서 동쪽으로 꺾어져 들어간 후에 상징적인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인정전을 들어가려면 몸을 틀어 북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중국의 경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의 선 상에서 어긋남이 없이 종렬로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관례다. 위엄과 엄격함을 중시하는 중국의 방식이다.

하지만 창덕궁에서는 정문으로 들어와 동쪽으로 가며 건축물이 이어진다. 근정전의 동쪽에 왕이 업무를 보는 선정전이 있고, 희정당이 배치돼 있는데 희정당은 왕이 잠을 자는 침전에서 업무를 보는 편전으로 바뀌어 사용된 곳이다. 그리고 왕비의 공간인 대조전 등의 전각이 배열됐다. 정형적인 횡적 배치를 하고 있다. 그만큼 절대적인 권위보다는 자연적인 지형을 이용해 낮은 산자락과 능선을 기대고 건축물을 지어 안락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셋째는 난방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궁궐 건축물의 차이다. 중국은 침대문화이고, 일본은 다다미 문화다. 우리는 온돌문화로 난방방식의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웃하고 있어 외형적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확연히 다른 특성이 있는 것이 한·중·일의 관계이다. 난방방식의 차이가 생활전체를 다르게 만드는 주요요인으로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창덕궁의 아름다움은 전면에 있는 궁궐건축물이 아니라 후원의 아름다움이다. 창덕궁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자연미를 담은 세계적인 건축물이지만 창덕궁의 아름다움의 절정은 후원이다. 후원은 금원, 비원, 북원 등 다양한 이름이 지어졌지만, 지금은 후원이 공식 이름이다. 후원의 활용은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미인 자연미의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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