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철 한국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

 
동북아시아에서 비정형적인 궁궐로서는 으뜸가는 건축물이다. 바로 창덕궁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처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만든 경우는 없을 듯하다. 세계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안락하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극대화한 왕궁은 없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인 인공미를 절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권력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집은 주인을 닮는다. 한 나라의 궁(宮)도 주인인 군주를 닮는다.

결국, 한국인이 지은 건축물에는 한국인의 기질과 건축술이 그대로 담기기 마련이다. 어떤 건축물보다도 인공성의 절대치를 보여주는 것이 궁궐 건축이다. 또한 위엄과 품위를 함께 가지도록 건축되는 것이 궁궐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적인 건축물이 될 수밖에 없다.

자금성은 인공미의 절정이고, 창덕궁은 자연미의 절정이다. 비교가 불가한 것을 비교하는 것과 같다.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자금성은 우선 나무 한 그루 없고 바닥은 흙을 밟을 수 없다. 인위의 절정을 보여준다. 끝없는 평원에 지은 규격화된 모습이며, 산과 들과 물과의 연관성이 없이 자금성은 우뚝 서 있다. 장엄하고, 위압적이며, 인공적이다. 자연적인 것을 빼버리고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실험하는 공간 같다. 황제가 천제라는 발상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인간인 황제를 절대화시키고, 신격화시키기 위한 최고의 장치를 모두 설정해서 지은 건축물이다.

반면 한국의 건축물은 인간이 자연과 대등하거나 자연을 넘어설 수 있다는 상상을 하지 않는다. 자연은 자연대로 존재하고, 인간은 인간대로 존재하지만, 인간이 자연에 기댄 모습이 한국의 건축물이다. 자연의 생긴 모습 그대로를 이용한다. 터를 잡는 것부터가 다르다. 산과 들과 강과 작은 구릉까지 집터를 잡기에 좋은 곳을 먼저 잡는다. 인위적으로 땅을 가공하고 조작하지 않고 자연이 제공하는 자연스러운 그대로를 이용할 수 있는 터를 잡는 것부터가 다르다. 다음으로, 건축물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를 이용해서 건축물을 짓는다. 창덕궁이 그렇고, 창경궁이 그렇다. 일제 강점기에 둘로 나뉘기 전에는 동궁(東宮)이라 해서 구릉을 사이에 둔 하나의 공간이었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와 확연히 다른 점이 보인다. 중국과 일본은 인공미를 내세운다. 한국은 자연미를 내세운다. 물론 건축물이 인공미의 절정이라는 것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건축물을 인공미의 절정으로 몰고 갈 것이냐, 자연미로 귀결지을 것이냐 라는 문제에서 한국은 자연미로 중국과 일본은 인공미로 마무리를 짓는다. 중국과 일본은 같은 인공적인 마무리를 하지만 상징하고자 하는 목표가 다르다.

중국은 과시로 마무리하고, 일본은 정형미로 마무리짓는다. 중국은 크기와 모양에서 과장을 즐긴다. 인공적인 것을 확장해서 강한 이미지를 보이려 한다. 규모 면에서 일단 크고, 곡선은 휘어짐이 급해 인공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뿐만 아니라 바닥은 철저하게 돌이나 전각으로 깔고 담장도 높아 근접하기 어렵다. 자금성에서는 나무를 구경하기 어렵다. 그만큼 인공적이다.

반면 일본은 세밀한 것까지 정해진 틀 안에서 처리하는 특성을 보여 가구적인 맛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인공적인 건축물에 자연적인 것을 넣어 인공미와 자연미의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래서 중국의 자금성을 보면 인공의 절대치를 최대한 끌어올린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한다. 장대하고 위엄을 자랑하며 자연스러운 것보다는 인위적인 것을 과시하고 있다. 건축물에 들어가면 사람이 눌리는 기분이 들게 한다. 어디에도 부드럽고 편안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닌 것을 보여주려는 황제라는 신분에 절대적인 힘의 과시가 필요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위엄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곳곳에 보인다. 나무가 없는 궁궐, 흙이 사라진 궁궐바닥, 어디에도 자연이 보이지 않고 인공적인 절대치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읽힌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