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철 한국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

 
창덕궁의 후원은 권력과 품위를 보여주려는 노력보다 자연스러움과 너그러움을 받아들인 것으로 유례가 드물다. 인위보다 자연을 먼저 받아들이고, 허세보다 친근함으로 다가오는 궁궐의 후원이다.

더구나 후원에는 십여 개의 정자가 있지만 다같이 모양과 크기가 다르다. 궁궐의 정자지만 볏짚으로 엮은 농한정도 있고, 부채꼴 모양의 지붕을 한 관람정이 있다. 같은 것의 반복을 꺼리는 한민족의 특성이 그대로 녹아 있다. 다른 것들을 모아 큰 통합을 만들려는 의도가 곳곳에 보인다. 같은 것의 반복을 꺼리는 성향이 우리에게는 강하게 남아 있다. 의도적으로 좌우대칭이나 상하비례 같은 인공적인 요소를 죽이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만들려는 의식이 강하게 들어 있다.

같은 것의 반복은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다른 것을 들여 조화롭게 만드는 것은 보통의 안목으로는 만들어내기 어려운 창조 영역이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원한다. 새로움의 방향은 자연스럽고 단순하게 만들려는 의식이 강하다. 창덕궁 후원의 연못도 사뭇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공식적인 행사를 주도했던 입구에 있는 애련지는 사각 모양으로 인위적인 느낌이 들지만 다른 연못을 자연지형 그대로 만들었다.

첫째 영역은 부용지를 중심으로 부용정·주합루·영화당·사정기비각·서향각·희우정·제월광풍관 등의 건물들이 있는 지역이다. 둘째 영역은 기오헌·기두각·애련지·애련정·연경당이 들어선 지역이다. 셋째 영역은 관람정·존덕정·승재정· 폄우사가 있는 지역이다. 넷째 영역은 옥류천을 중심으로 취한정·소요정·어정(御井)·청의정·태극정이 들어서 있다. 그 밖에도 청심정·빙옥지·능허정 등이 곳곳에 있다.

감탄할 만큼 자연스러운 그대로다. 왕궁의 놀이터가 평범한 백성들이 사는 마을 동산에 정자를 지었다는 것 이상이 아니라는 것에 감동한다. 왕의 권위와 세도를 벗어던지고 한국의 산과 골짜기와 오솔길을 그대로 살린 모습이다. 창덕궁 후원의 구성은 낮은 야산과 골짜기, 그리고 앞에 펼쳐진 편평한 땅 등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꼭 필요한 곳에만 인공을 가해 꾸며놓았다. 따라서 우리나라 조원(造苑)의 특징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건축은 조경문화가 약하다. 마당이라는 공간 활용과 마당이라는 정신적인 공간이 절대적으로 커서 마당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앞마당에는 큰 나무도 심지 않고, 화단도 가능한 한 만들지 않는다. 화단조성이나 조경은 뒷마당에 서나 가능하다.

하지만 창덕궁에서의 후원은 다르다. 왕만이 출입할 수 있다고 해서 금원(禁苑)이라고 하고, 일제강점기에는 비밀스럽다는 요소를 더해 비원(秘苑)이라고도 했다. 다양한 모습과 다른 특성으로 궁궐로서 최상의 자연스러움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러한 후원을 둔 궁궐은 없다. 위압적이어서 압박받는 기분이 드는 궁궐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서로 주고받으며 대화를 하는 듯한 궁궐이다. 세계 어디를 여행해도 찾아볼 수 없는 궁궐건축물이다.

인공적인 것을 최대한 배제해서 더 아름답게 만드는 자연미의 정점이 창덕궁이고 한국의 건축술이다. 인공이라는 극단과 인공적인 면에서 가장 멀리 있는 자연이라는 극단을 만나게 하는 장소로서의 공간창조를 하는 민족이 한민족이다. 작지만 큰 꿈을 가진 민족이다. 궁궐 건축보다도 더욱 이러한 원리를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이 백성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백성들의 집은 궁궐보다도 천연덕스럽고 능청스러울 정도로 자연과의 친교를 다진다.

창덕궁은 궁궐건축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자연미가 돋보이는 궁궐이다. 소박해서 아름답고, 한가로워 자연스러운 정취를 즐기는 한국적인 정서이다. 궁궐이지만 자연미가 그대로 살아 있는 세상에서 드문 궁궐건축의 전형이다. 가꾸지 않은 아름다움을 아는 것은 자연을 마음에 들인 사람에게서만 가능한 일이다. 창덕궁은 자연미를 사랑한 조선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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