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철 한국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

 
창덕궁의 아름다움은 전면에 있는 궁궐건축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후원에 있는 자연과 건축이 만나 어울림의 한마당을 만들어 낸 후원에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것도 후원의 비정형미와 자연미에 있다.

세계 어느 나라의 궁궐에 산과 들이 있고, 시내가 있으며 숲 속을 따라 오솔길을 걸을 수 있는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들여놓은 곳이 있는가. 자금성을 들여다보면 삭막하기 이를 데 없다. 높은 담과 웅장한 건축물 그리고 인공적인 면에서 느껴지는 강박감과 왜소함 같은 것들이다. 흙을 구경할 수 없고 나무 한 그루 구경하기 어렵다. 인간적인 따뜻함을 찾을 수가 없다. 일본의 경우 오사카 성과 히메지성도 마찬가지다. 오사카 성에 비해 엄청난 규모의 해자와 히메지성의 산꼭대기에 지어진 성의 모습에서 자연스러운 인간을 느낄 수 없다. 권력유지와 권력행사의 강퍅한 느낌만을 보여줄 뿐이다.

창덕궁 후원으로 들어가면 먼저 만나는 곳이 ‘부용지’다. 부용지 수면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주변의 풍경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답다. 과거를 보거나 국왕의 연회장소로 사용하였던 영화당에서 바라보는 부용지와 부용정에서 바라보는 부용지의 수면은 전혀 다르지만 다 같이 아름답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색다른 멋을 풍긴다.

규장각 방향에서 바라보면 부용지의 한쪽에 떠 있는 듯한 부용정이 빛나도록 아름답다. 두 발은 부용지에 담그고, 몸체는 뭍에 둔 정자가 멋스럽다.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드문 정자를 짓는 법이다. 연못 밖에 정자를 짓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는 일부는 연못에 들어가 있고, 일부는 뭍에 둔다. 다른 것을 서로 끌어들여 화합하게 하는 특성이 있다. 경복궁의 향원정과 함께 궁궐 연못으로 백미다.

‘부용芙蓉’은 연꽃을 뜻한다. 규모는 작지만, 정신은 다 담았다. 자연지형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이용해 연못 주위에 저마다 크기가 다른 한옥을 지었다.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 꽃처럼 피어나는 곳이다. 연못 안에 팔각 석주를 세운 다음, 그 위에 목재를 얹어서 정면 5칸, 측면 4칸, 배면 3칸의 누각을 지었다. 몸의 반은 뭍에 몸의 반은 연못에 발을 담갔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정자이다. 우리는 연못에 정자를 지으면 반은 연못 안에 있게 해 물 안에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능청스럽게 정자의 기둥을 물에 담가 묘한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한국적인 정자의 모습이다.

부용지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는 뜻인 ‘애련지’가 있다. 애련지 북쪽에 서 있는 간결한 정자가 애련정이다. 입수구가 흘러내리는 도랑물이다. 우리나라의 낮은 산에 들면 만날 수 있는 도랑물이 물길을 따라 작은 폭포수처럼 떨어진다. 어디 하나 인위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낙숫물처럼 떨어지는 도랑물이 너무나 친근하고 편안하다.

애련정은 숙종 때 애련지의 물가에 지은 정자다. 일반 건물보다 추녀가 길며 추녀 끝에는 잉어 모양의 토수가 있다. 물 기운으로 불기운을 막는다는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것이다. 건물을 받치는 네 기둥 가운데 두 기둥은 연못 속에 잠겨 있는 초석 위에 세워져 있다. 부용정과 같은 원리다. 정자 사방으로 평난간을 둘렀는데, 낙양창 사이로 사계절이 변하는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계절이 수시로 왔다 가는 것을 감상하기에 좋다.

더 들어가면 반월지라고도 부르는 ‘존덕지’가 있다. 이곳에서부터는 이미 궁궐이란 생각을 잊어버린다. 자연림이 그대로 있다. 한국의 산하의 뒷동산 같은 곳에 정자와 자연지형 그대로를 살린 연못이 있다. 연못이라기에는 작고 아담해 그냥 물이 머물러 있는 곳처럼 느껴진다.

자연이 곁에 있고 권위의 궁궐은 이미 잊고 여유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세상에 어느 왕궁이 이처럼 꾸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과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 있는가. 이것이 한국적인 아름다움이고 여유이다. 세상을 품어 안는 마음이 큰마음이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아름다운 궁궐이 창덕궁이고, 창덕궁 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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