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철 한국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

 
창덕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배경에는 창덕궁의 궁궐건축이 아니라 창덕궁 후원에 힘 입은 바 크다. 세계 어느 나라의 왕궁이 창덕궁만 한 왕궁이 창덕궁만큼 자연을 들여놓은 곳이 있을까.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중국의 자금성, 일본의 오사카 성, 유럽의 많은 궁이나 성들을 보라. 자연을 찾을 길 없다. 인위적으로 완성돼 삭막하다.

창덕궁처럼 산과 물 그리고 숲이 어우러진 오솔길을 걸을 수 있는 궁은 없다. 이렇게 한적하고 여유로워도 좋은가 싶을 만큼 창덕궁의 후원은 원시림에 가깝다. 가꾸어지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에 먼저 당황스럽게 한다. 인공미와 인위적인 모습의 절대치를 구현하려는 것이 어느 나라나 왕궁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천황이나 왕 아니면 교황이 주인이었던 당시에는 백성은 다스려야 하는 존재였기에 황제나 왕은 강하고, 크고,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되게 하기 위한 장치를 썼다. 그래서 궁의 크기가 커지고 건축물은 확장됐다. 하지만 창덕궁은 규모 면에서도 아담하고 친근하다. 이것은 한국인의 정서에는 건축물만을 완성하기 위해 건축하지 않고 주변 산과 들과 강이 모두 건축물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건축물을 짓는 한민족의 특성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건축물에서는 적게 짓고, 주변의 자연은 가능한 한 많이 담으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경복궁을 지을 때 풍수 지리학의 원리에 따라 뒤에 북한산과 경복궁의 주산인 백악산자락에 있는 ‘매봉’ 혹은 ‘응봉’이라고 하는 산을 주산으로 건설했다. 오른쪽의 인왕산, 왼쪽의 낙산, 그리고 앞산인 남산과 그 건너의 관악산까지를 고려하고 바로 앞에 흐르는 청계천과 멀리 흐르는 한강을 고려해서 지은 것이 경복궁이다. 경복궁을 이야기하려면 주변 산과 물을 이야기하지 않고 한국인의 자연관과 정서를 설명할 수가 없다.

한국인은 작은 건축물에 주변 자연의 원리를 고려하는 큰마음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기록에 ‘동이(東夷)’는 ‘대인(大人)’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민족은 큰 사람이다. 대륙적인 기질을 중국인보다도 어떤 면에서는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세계에 진출하는 것이나 조선업이나 포항제철소 같은 대형 사업을 세계의 선두에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을 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대형사업인 토목이나 건축 같은 것도 규모가 큰 사업들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집은 작게, 문은 크게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집은 잠을 자고 생활하기에 적당할 만큼의 공간이면 충분하고, 나머지는 자연을 들여놓으려는 배포 큰 민족이다. 창덕궁 후원에 가면 자연을 얼마나 품고 살고 싶어 하는 민족인가를 알게 된다.

창덕궁의 후원을 걸으면 깨닫게 된다. 자연 속에 건축물이 듬성듬성 들어와 있어 정자나 누각을 만나는 것이 반갑다. 인위적인 건축물 사이에 몇 그루 나무나 정원을 배치한 것이 아니라 산과 숲이 그대로 있는 곳에 건축물을 산세와 구릉에 어울리게 배치해서 지었다. 숲 속의 집이다. 서양이나 다른 나라의 궁성과 달리 집 속의 정원이 아니다. 자연과 사람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인식을 하게 한다. 서로 화합된 모습, 서로 기댄 모습 같다. 창덕궁은 안으로 들수록 깊어진다. 건물은 더욱 드물어지고 산과 숲 속에 든 느낌이다. 궁궐이란 것을 착각하게 할 정도로 한적하다. 창덕궁의 누각은 대체로 연못을 끼고 지어져 있다.

창덕궁 후원은 네 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정조가 즉위하던 해에 완공된 규장각과 주합루가 있는 부용지 일대는 후원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창덕궁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반원을 그리는 모양의 터 한복판에 부용지를 만들었다. 연못은 땅의 모양을 본뜬 사각이고, 연못 안에는 하늘의 모양을 본뜬 둥근 섬이 있다. ‘땅은 네모나고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리를 담았다. 섬에는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주변 구릉의 산에 심어진 활엽수와 소나무는 잘 어울린다. 햇볕이 잘 드는 방향으로 주합루를 지었다. 일 층은 규장각이다. 일 층은 각이라고 하고, 이 층은 ‘루’라고 하는 이름을 그대로 달았다. 작은 건물들이 배치돼 있는데 하나같이 제 자리에 있는 것이 돋보인다. 독자적으로 아름다우면서 함께 어우러져 더 빛나는 모습을 구상하는 것이 한국의 미적 배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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