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헛제삿밥은 경상도 안동, 대구, 진주에만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헛제사밥은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을 태두로 한 경상 사림파의 서원 문화가 만들어 낸 음식이기 때문이다. 경상도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산악이 많고 평지가 적어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중심이다. 지주계급이 적은 반면, 수려한 자연 경관만큼이나 걸출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됐다.

조선역사지리서인 ‘택리지’에는 ‘조정의 인재 반이 영남인’이라고 적혀 있을 정도다. 이들은 사대부로 국정에 참여했다. 경상 좌도였던 안동의 이황과 경상 우도였던 합천을 중심으로 한 조식은 영남사림파의 두 축을 이루었고, 사림은 16세기 이후 중앙 정계에 본격 진출했다. 이들이 관직에서 떠나 낙향 후 서원을 짓고 후학들을 길러냈다. 이 과정에서 태생된 음식이 바로 헛제사밥이다.

헛제삿밥은 양반들이 춘궁기에 드러내 놓고 쌀밥을 먹기가 미안스러워 제사 음식을 차려 놓고 가짜로 제사를 지낸 후 제사 음식을 먹은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제사를 지낼 수 없는 천민들이 한이 맺혀 제사도 지내지 않고 제삿밥을 만들어 먹은 데서 시작됐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는 서원에서 공부를 하던 유생들이 깊은 밤까지 공부를 하다 출출해지면 제사음식을 차려 놓고 축과 제문을 지어 풍류를 즐기며 허투루 제사를 지낸 뒤 먹던 음식이 바로 헛제사밥이라고도 한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차려내는 음식을 제수 또는 제찬이라고도 한다. 기본 제수는 메(기제-밥, 설-떡국, 추석-송편), 삼탕(소, 어, 육), 삼적(소, 어, 육), 숙채(시금치, 고사라, 도라지의 삼색 나물), 침채(동치미), 청장(간장), 포(북어, 건대구, 육포 등), 갱(국), 유과(약과, 흰색산자, 검은 깨 강정), 과실(대추, 밤, 감, 배), 제주(청주), 경수(숭늉) 등이다. 물론 지체가 높거나 살림이 넉넉한 집안에서는 삼탕, 삼적, 삼채를 더해 오탕, 오적, 오채를 올리기도 하고 지방, 학파, 가문에 따라 제수가 달라지기도 한다.

헛제사밥도 위 제수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차려내는데, 주재료가 나물, 탕국, 생선자반 중심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실제 제사를 지낼 때 향불을 피워 향이 나물무침에 배어들게 해 제사 음식의 분위기를 더욱 돋우기도 했다. 그래서 낮에는 절대로 음식을 만들지 않았는데, 낮에 묻힌 나물은 손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제사상이 그렇듯 나물 가짓수도 반드시 홀수여야 하고 한 번 무치고 나면 절대로 다시 무침하지 않았으며 간장, 깨소금, 참기름 외에 다른 조미료를 넣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또 마른 찬으로는 민물고기나 조기 등을 약간 말려서 쪄냈다. 탕국은 생선대가리 남은 것을 전유어와 함께 끓여서 냈다.

다만 제사상에는 고추가루가 들어간 찬은 내놓지 않는데 비해 헛제사밥에는 배추김치라든가 고춧가루가 들어간 찬이 올려진다.

헛제사밥은 차려 놓은 그대로 먹기도 하지만 놋대접에 삼채나물과 탕국, 고소한 참기름을 넣고 비벼 조상과 자손이 함께하는 신인공식(神人共食)의 의미를 갖는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올리는 3탕, 3적, 3채를 기본으로 차려 낸다. 후식으로 떡과 과일, 식혜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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