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청계천 꼭지딴 해장국 추탕(鰍湯)

한양 성안의 관노인 반인들은 ‘추두부탕’을 끓여 먹었지만 ‘꼭지’라는 거지 조직에서는 미꾸라지를 잡아 추탕(鰍湯)을 끓여 먹었다. 이들 거지 조직은 옛 동대문운동장 터인 동대문디자인파크플라자 자리에 있던 가산(假山, 가짜 산)이 본영이었다. 서울 한복판을 동서로 흐르는 청계천(淸溪川)은 동대문 남쪽 오간수문(五間水門)과 이간수문(二間水門)을 거쳐 성 밖으로 흘러나간다. 이 두 수문(水門) 사이로 삼각주가 있었다.

세종대왕이 물난리를 자주 겪는 청계천의 석축 공사와 영조 36년 20만 명의 인부를 동원 청계천의 이곳에서 파낸 모래를 청계천 6가에서 방산동에 이르는 양 둑에 인공적으로 산처럼 쌓아 놓아 가산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가산은 한양 거지들의 집합소가 되고 본영이 됐다. 거지들은 주인 없는 가산에 땅굴을 파고 그 속에서 살면서 얻어먹고 있었기 때문에 거지를 일명 ‘땅꾼’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한양 거지의 대본영(大本營) 가산을 중심으로 대문 안에 광교지영(支營), 수표교지영, 복청교지영, 대문 밖에 서소문지영, 새남터지영, 만리재지영이 있어 개천의 다리 밑에 거적을 이용해 움막을 짓고 살고 있었다.

성종은 거지정책을 바꿔 이들을 조직화해 한 해에 한 번 씩 선거를 통해 깡이 세고 통이 큰 꼭지(거지) 두목(꼭지딴)을 뽑아 이들의 생살권(生殺權)을 주고 기강을 잡게 하면서 생계를 보장해 줬다. 옛날 궁중에서 쓰는 약을 맡아보는 내의원이나 가난한 백성들의 병을 무료로 치료해 주던 혜민서(惠民署) 같은 곳에서 부탁을 받고 뱀이나 지네 등 약으로 쓸 동물이나 곤충을 잡아 오는 일을 하거나 잔칫날이나 장례식 때 궂은일을 도맡아 하게 했다.

특히 구걸할 수 있는 허가 조건으로 절대 밥은 얻어 오되, 건건이(반찬)는 얻어 오지 않도록 한 것이 아마 당시도 식중독 사고를 염려해서 취한 조치인 것 같다.

반찬을 얻어 올 수 없는 관계로 거지들이 밥을 얻으러 간 사이 남아 있는 거지들은 청계천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추탕을 끓이는데,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고, 파와 마늘은 물론 잡다한 재료를 모두 쓸어 넣고 추탕을 끓여 구걸해온 밥과 함께 먹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당시 추탕집은 포도청에서 뒷돈을 대줄 정도였다고 한다.

이 추탕 끓는 냄새가 얼마나 구수했던지 일제강점기에 이 추탕을 ‘꼭지딴 해장국’이라 부르며 청계천 주변 상인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사 먹었다고 한다. 꼭지들이 운영하던 추탕 집들은 하나둘 문을 닫고 지금은 이 추탕의 명맥을 이어오는 집이 청계천 주변의 ‘용금옥’, 1933년 개업한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대광고 안암천 건너편 ‘곰보추탕’, 1930년 신설동 옛 경마장 부근에서 개업한 이후 하월곡동으로 이사 간 ‘형제추탕’ 세 집만 남아 있다.

시청 뒤 코오롱 빌딩 맞은 편 골목으로 들어가서 3·4번째 골목 한옥에 위치한 ‘용금옥’은 1932년 신석숭 옹이 안식구인 홍기녀 씨와 주점 겸 추탕집으로 시작해 추탕 맛이 장안에 소문이 나자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 당대의 정치인, 언론인, 문인, 예술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남북 적십자회담 때 북측 수석대표인 박성철 부주석이 “아직도 용금옥이 있습니까?” 하면서 용금옥 안주인의 안부를 물을 정도였으며, 월북한 고려대 전 교수이자 김일성의 통역관 노릇을 한 김동석도 용금옥의 안부를 물었다고 해 더 유명해졌다.

특히 시 ‘논개’로 유명한 시인 변영로, 정치인 조병옥·유진오, 화가 김용환·김병기, 지휘자 연극인 박진·여석기·김정옥, 언론인 이관구·홍종인·선우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저명인사가 이 집을 자주 찾았으며 언론인이자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해방 이후부터 아직도 이 집을 찾는 단골이라고 한다. 자유당 말기 야당의 대통령 후보 조병옥 박사가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떠나기 전날 용금옥에 들러 추탕을 두 그릇이나 비우는 것을 보고 “그렇게 식성이 좋으면서 무슨 병이 있다고 미국에 가시냐?”고 말한 홍 할머니가 조 박사가 서거했다는 말을 듣고 가게 문을 닫고 남편과 함께 술을 마셨다고 한다. 원로 시인 이용상 옹은 ‘용금옥 시대’라는 책을 써 해방 이후 근대사를 조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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