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북한의 답변 지연으로 이산가족들의 애가 타고 있다. 오늘은 무슨 답변이 있을까. 이산가족들의 피는 말 그대로 말라가고 있을 것이다. 현재 이산가족 신청자는 7만여 명으로 연간 100명씩 상봉해도 수십 년이 걸리는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이제 이산가족 상봉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다. 반드시 면회소를 통해 직접 만나지 못한다면 영상상봉을 추진하여 한시라도 그들이 혈육들의 생사라도 확인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산가족들의 염원이 반영되어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북녘의 혈육에게 남길 마지막 모습이 될 수도 있는 영상편지 제작 사업이 수년째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진척도가 16.7%선에 머무르면서 사업 추진에 좀 더 속도를 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는 2012년 영상편지 제작 사업을 시작했다.13분 분량의 DVD로 제작되는 영상편지는 이산가족이 나와 북한의 가족에게 직접 그리움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업 첫해인 2012년 815편이 제작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2천 편이 제작됐다. 정부는 이렇게 제작한 영상편지를 향후 남북 당국 간 서신 교환이 이뤄지면 북한에 전달한다는 계획이다.아울러 정부는 영상편지들을 이산가족정보 통합시스템에 사료로도 보관할 예정이다. 7만여 이산가족 가운데 영상편지 제작 참여 의사를 밝힌 이는 1만 6800여 명이다. 지금 같은 제작 속도라면 많은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상봉은커녕 영상편지조차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88년부터 작년까지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12만 9264명이며, 이 가운데 지난해만 3841명이 사망하는 등 전체 상봉 신청자의 44.7%에 이르는 5만 7784명이 세상을 떠나 이제 남은 생존자는 7만 1480명뿐이다. 영상편지 제작에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은 일단 예산 문제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 매년 5∼6천 명을 촬영해 3년 안에 사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서 연간 제작 편수를 2천 건으로 낮춰 잡았다. 민간 업체에 맡기는 영상편지 한 편 제작에는 약 40만 원이 들어간다. 지난해에는 7억 9천여만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통일부는 정부의 긴축 재정 기조 속에서 예년보다 예산을 대폭 늘리기 어렵다고 보고 올해도 지난해처럼 2천 편 가량의 영상편지를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2일 “작년에도 연초에 5천 편을 계획했다가 복지 예산 등 긴급하게 쓸 예산들이 있어 많이 축소가 됐다”며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이산가족 문제의 시급성을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가 획일적인 업체 위탁 방식에서 벗어나 민간 자원 봉사자들의 참여를 조직하면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관심도 환기시키면서 영상편지 제작을 더 빠르게 전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의 경우는 어떤가. 독일은 이산가족 상봉과 서신교환, 정치범 소환 등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그것은 분단국가의 미래에 대한 또 하나의 투자였다. 단 한 번만이라도 혈육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줄 힘이 과연 우리 정부에 없단 말인가. 영상상봉이란 절체절명의 과제가 과연 돈이 없어 중단해야 할 그런 시시한 일인가?

북한은 쿠바에서 쓰던 낡은 미그기까지 사다 부품을 교체해야 할 만큼 군사력이 쇠퇴하고 있다. 우리의 군사안보에 사소한 빈틈도 없어야겠지만 이제 ‘인간안보’에도 정부는 관심을 돌려야 한다.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깨끗하게 치유하지 못한 채 한 쪽에서 화려한 경제기적의 풍요에 도취되어 희희낙락할 때 또 다른 쪽에서 평생을 피눈물 속에 살아온 이산가족들이 있음을 우리는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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