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최근 남과 북은 고위급 접촉을 통해 새로운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냈다. 북한은 국방위원회 대표단의 이름하에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핵심 인물 원동연을 내세웠고, 우리 역시 청와대의 김규현 NSC 사무처장을 내세움으로써 대화의 격을 최고로 높였다. 일각에서 국정원과 통일부의 집행기관을 초월한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하지만 일단 남북대화의 새로운 방식을 창조했다는 측면에서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북한헌법 제6장 제1절 ‘최고인민회의’에 보면 제87조 “최고인민회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주권기관이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 수위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에 대해서는 한참 뒤에 제4절 제117조를 통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여 다른 나라 사신의 신임장, 소환장을 접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최고인민회의 바로 뒤인 제2절 국장위원회 위원장에 보면 제100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영도자이다”라고 못 박고 있다. 여기서 왜 북한이 이번 대표단 명칭을 ‘국방위원회 대표단’으로 명명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은 북한의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김정은과 청와대의 주인, 즉 박근혜 대통령 간에 이뤄진 직접적인 대화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은 이번에 세 가지 중 이른바 ‘비방중상 중지’에서 성과를 얻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모든 언론들이 북한 체제에 대한 상식적인 비판까지 삼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우리 한국은 북한에 대해 비판은 했어도 비방은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기준으로 비방이지 보편적인 기준으로 보면 비방논리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게 지론이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북한은 최근 우리 언론들이 김정은의 모친 고영희 등에 대해 진솔하게 보도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얼마 전 구둣발 채로 애육원에 들어간 것을 사례로 꼽았지만 실은 고영희의 부친 고경택을 비롯한 김정은 위원장의 가계에 대한 보도가 더 아팠던 것이다. 고영희의 자료들이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질 경우 ‘백두혈통’은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고, 따라서 김정은의 리더십은 초반에 붕괴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에 이산가족 상봉 등 우리 정부의 요구는 실현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 우리 한국은 북한의 김정은 체제를 관리할 수 있는 단계 앞에 서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분단관리에서 벗어나 평양 정권마저 관리할 수 있게 된 작금의 상황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북한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틀’을 시도하고 있다. 1971년 닉슨이 나서 미중관계를 개선하면서 신데탕트 시대가 열리게 되자 김일성 주석은 서둘러 ‘7·4공동성명’을 만들어내며 남북 공존전략을 수립하였고, 1989년 동구라파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소련공산당마저 기발을 내리자 김정일은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새로운 공생전략을 만들어냈다.

이제 김정은 체제에 도달해 북한 사회주의의 고갈은 절정에 달하고 있다. 중국마저 북한은 버릴 수 있다고 서슴없이 공언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중국이 공개한 ‘2014년 아시아태평양지역 발전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의리는 소인의 원칙이요, 정의는 위인의 원칙”이라며 북한과의 실질적 의리가 종료되었음을 선언하였다. 대남의존도는 김정은 체제의 새로운 생존전략이다. 설사 그것이 거시적 전략이 아니라 미시적 전술이라고 해도 우리가 마다할 이유는 없다. 북한이 스스로 우리의 관리를 받겠다는데 무엇을 망설이겠느냐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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