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김정은의 신년사를 필두로 북한이 새해 들어 남북관계 개선을 적극 강조하고 있다. 일단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지난해 신년사에서 무려 통일이란 용어를 22차례나 강조한 북한이 약 한 달 후인 2월 12일 제3차 핵실험을 단행한데서 우리는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작년의 경우를 평가할 때 북한은 분명 양두구육(양의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파는 행위)의 행태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올해도 똑같이 행동하기에 북한이 처한 환경은 만만치 않다. 우선 첫째로 장성택 정변 이후 북한의 권력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으며 주민들의 결속력도 그 어느 때보다 균열되어 있다. 북한군의 야전을 대표하는 김격식 대장도 처형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가운데 리명수 대장(전 인민보안부장), 김영철 대장(정찰총국장), 백세봉(제2경제위원장) 등 주요 인사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있다. 김격식은 청천강호 사건 때 그 책임을 지고 총참모장직에서 물러난 후 사실상 재기가 불가능한 상태다.

특히 김경희가 종적을 감춘 채 그의 행적을 두고 흉흉한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스스로 자살했다느니, 완전 연금 상태에 들어갔다느니 하는 소문이 그 내용들이다. 그만큼 정치적 스승을 숙청한 김정은의 앞날에 불길한 예감이 찾아오고 있다는 반증들이다. 두 번째로 중국의 견제와 압박이다. 지난해 북한은 중국의 만류를 뿌리치고 불시에 3차 핵실험을 단행했지만 올해 제4차 핵실험마저 강행한다면 그 때 북-중 관계는 말 그대로 끝장이다.

과연 이런 대내외적 상황들을 무시하고 김정은이 다시 핵실험 명령을 내릴 수 있을까. 북한이 다시 대남 화해 손짓을 내밀고 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첫째로 김정은은 대중의존도에서 벗어나 대남의존도로 가는 것이 자신의 3대 세습 안착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왜일까. 중국의 시진핑 체제는 출범 1년여 만에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과 너무 친밀해졌다. 심지어 베이징의 외교가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미군만 따라오지 않는다면 남조선 정부가 압록강 국경에 다가와도 무방하다”는 말을 했다는 설이 파다하다.

이 말을 듣고 김정은이 얼마나 뜨끔했을까. 다음으로 김정은이 지난해 7월 평양을 방문한 리위안차오 부주석 앞에서 “강경 군인들의 말을 들어 제대로 된 것이 없다”고 한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남조선과 엇서봤다 이로울 일이 없다는 말이다. 김정은은 이번 장성택 정변을 겪으며 어느 누구에게 의존하기보다 이제 자기 힘으로 정권을 끌고 가겠다는 작심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군부 3두 마차도 자기 말에 고분고분하는 최용해(총정치국장)와 이영길(총참모장), 장정남(인민무력부장)으로 교체하였던 것이다. 대관절 김격식과 현영철, 김영철 등 군부 강경파의 말에 따라 봤자 제대로 풀린 일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군사도발로 얻는 ‘사기’보다 스키장 등을 건설해 ‘인기’를 올리는 일이 더 즐겁다는 말이다. 개성공단의 국제화에 이어 금강산 관광사업이 재개되면 김정은의 금고에는 꽤 돈이 들어올 것이다.

우리 정부는 변화하고 있는 한반도와 주변정세의 추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처럼 또 북한은 2중 전략을 쓰고 있다고 지레짐작하고 북한의 평화공세를 외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북한의 모든 행동은 우리 한국의 눈동자 안에 있다. 더 나아가 이제 한반도의 전략적 조종력은 서울에 있다. 북한이 제 아무리 떠들어봤자 허장성세일 뿐인데 무엇 때문에 주저하겠는가. 한반도의 통일환경이 지금보다 좋은 때는 오기 어렵다. 박근혜정부는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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