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말 그대로 극적으로 타결됐다.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 ‘4자회담’은 벼랑 끝에서 모두가 살기 위해 썩 내키지 않은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결실이 미미한 것도 아니다.

민주당이 끝까지 사수했던 ‘국정원개혁특위’는 민주당 의지대로 관철됐으며, 특위 위원장도 민주당 몫으로 합의를 이뤄냈다. 소관 법률안을 처리할 권한까지 갖게 함으로써 특위에 부쩍 힘을 실었다. 게다가 의제 조율로 세월을 허비했던 과거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국회정보위의 상설상임위화’ 등 핵심 의제도 합의사항 전문에 포함시켰으며 연말까지 입법화한다는 시한까지 못 박았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의미 있는 결실이다. 이쯤 되면 새누리당이 노골적으로 발목을 잡지 않는 한 국정원 개혁은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하나 안하나?
민주당이 ‘국정원 개혁특위’보다 더 집중했던 의제가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 특검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김한길 대표가 직을 걸겠다고 했던 것도 그 핵심은 특검 도입이었다. 그러나 이번 합의사항에는 알맹이가 빠져버렸다.

특검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이 합의사항이라고 내놓으면 민망할까봐 그랬을까. 합의사항 4항에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의 시기와 범위 문제는 계속 논의한다”라고 돼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지 애매하다. 특검을 실시한다는 것인지, 계속 논의만 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사실 합의사항 전문에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다면 그 규정은 있으나마나 한 사문화된 규정에 다름 아니다. 새누리당이 “우리가 언제 특검 한다고 했느냐?”고 묻는다면 민주당은 뭐라 말 할 것인가. 논의만이라도 하자고 해야 할 판이다.

당장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도 바로 이튿날 4항의 규정과 관련해 “논의를 한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그러면서 당초 새누리당 주장대로 “특검은 기본적으로 안된다”고 하였다. 당내 실세 사무총장의 이런 발언을 고려한다면 특검과 관련해서는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 민주당 내 일부 강경파가 반발하는 것도 이런 이유라 하겠다. 특위만 살리고 특검을 무력화하겠다면 여기까지 올 필요가 뭐가 있었느냐는 지적이다. 최소한 특검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이나 시점이라도 적시했어야 했다는 뜻이다.

당내 일부 반발이 나오자 김한길 대표가 직접 해명을 했다. 김 대표는 “특위는 지금 우리가 당장 먹지 않으면 맛이 가버리는 과일과 같다”고 비유하면서 특검 대신에 특위를 먼저 선택한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특검을 반드시 도입하겠다는 민주당의 입장은 추호도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한길 대표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특검에 집착해서 강하게만 나가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고민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임명동의안을 밀어붙이는 새누리당의 기세를 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현찰’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야권을 지지하거나 또는 박근혜정부를 비판하는 쪽에 선 사람들이 볼 때는 더 큰 현찰을 포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국정원 개혁특위가 승용차 한 대를 살 수 있는 현찰이라면, 특검은 고급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현찰이기 때문이다. 특검은 야권연대의 명분으로나 정국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실리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민주당이 이를 느슨하게 합의한 것은 패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민주당이 특검 도입을 끝내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김한길 대표 체제로는 어렵다는 생각뿐이다. 사실상 특검 논란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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