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최근 전남 화순에서 열린 ‘2013 씨름 왕중왕 전’에는 여러 올드 스타들이 나와 흥미를 더했다. ‘인간 기중기’ 이봉걸과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가 양 팀 감독으로 나서고, 털보 이승삼, 오뚜기 손상주, 기술 씨름의 달인 이기수, 람바다 박광덕, 불곰 황대웅 등 한 시절을 풍미했던 장사들이 오랜만에 경기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세월이 흘러 근육이 늘어지고 허벅지가 가늘어지긴 했지만, 라이벌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사뭇 비장해 보였다. 해설자가 분명 몸살 날 것이라고 말했지만, 지켜보는 사람은 재미가 있었다. 천하장사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 웃고 있는 올드 시청자들 가슴 한 구석으로 찬바람이 스윽 지나간다.

이날 씨름 중계방송을 시청한 이들은 실업자이거나,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지 않거나, 세상 어느 누구의 눈치도 살필 필요가 없는 팔자 좋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씨름 경기는 화요일 낮 1시 반 정도부터 시작되어 3시 정도에 끝났고 그 시간에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을까 싶다.

평일 한낮의 경기는 평화롭지만 무료하기도 하고 나른하기도 한 아무튼 그런 비슷한 기운 같은 게 느껴진다. 주전자가 저 혼자 김을 뿜고 있는 손님 없는 다방 같은, 평화롭다고만 말하기에는 뭔가 허전한 그러한 느낌.

한때는 씨름 인기가 대단했다. 야구 축구 못지않았다. 1980년대 초반 시작된 민속씨름이 인기를 모았던 것은 현란한 씨름기술 덕분이었다. 이만기가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 이봉걸을 넘어뜨리는 장면은 절로 웃음이 터지게 하였다. 이기수 손상주 이승삼 등은 곡예에 가까운 씨름 기술을 선보여 박수를 받았다.

씨름이 재미가 없어지게 된 것은 ‘덩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부터다. 코끼리 같은 선수들이 숨을 헐떡이며, 기술이랄 것도 없이 그저 밀어붙이기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외면을 받게 된 것이다. 지겨운 샅바 싸움도 씨름을 재미없게 만들었다.

젊은 세대들은 씨름이 왠지 촌스럽다고 느낀다. 우선 경기장이 그렇다. 주로 지방의 실내 체육관에 임시로 모래판을 만들어 경기를 치르다 보니 어설프고 세련된 맛이 없는 것이다. 프로 축구가 전용경기장을 만들어 크게 활성화 된 점에 비추어 볼 때 씨름도 전용 경기장을 만들고 시대에 맞는 콘텐츠를 개발해 채우면 좋을 것 같다.

씨름대회를 하는 데 지자체장이나 지역 인사들이 나와 인사말을 하는 것도 촌스러워 보인다. 학교 조회식도 아니고 씨름 선수들을 세워놓고 씨름의 정신이 어떠하네 하며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도 무의미하고, 무엇보다 관중들이 지겨워 죽는다.

씨름뿐 아니라 지방에서 무슨 대회를 한다 하면, 개회식 무대에 등장하는 인사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기가 찬다. 도지사, 시장, 시 의장, 시 의원은 기본이고 여기에 수많은 지역 인사들이 줄줄이 올라온다. 다 올라가지 못하면 사진과 이름, 직책을 새긴 영상물을 돌린다. 장내 아나운서는 숨을 헐떡이며 이름을 읊는다. 도민과 시민이 주인이라는 도지사와 시장의 말과는 달리, 주인이어야 할 도민과 시민은 지겨워 죽는다. 또 무슨 VIP가 그렇게도 많은지, 앞자리 좋은 자리는 전부 VIP석이다.

관중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내가 관중이라면, 높으신 분들 연설이 듣고 싶을까, ‘소녀시대’ 노래를 듣고 싶을까. 관중을 하늘 같이 생각하면 답이 나오는데도 높으신 분들 입장을 먼저 생각하니,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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