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기본은 여전한 것 같다. 직장인들 이야기다. 최근 삼성 그룹 블로그 ‘삼성이야기’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삼성맨들은 모르면 물어보는 후배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모르면 솔직하게 모른다고 고백하고 물어보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이 말은 직장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어깨에 힘을 주고 아는 척 하는 ‘스펙’ 좋은 후배보다는 모르면 모르는 대로,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핀잔을 듣고 깨질망정 자꾸 묻고 씩씩하게 노력하는 모습이 예쁜 것이다.

제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어도 군대에 처음 들어가면 어리벙벙하기는 다 마찬가지다. 오히려 많이 배우고 귀하게 자란 사람일수록 더 어리벙벙한 경우가 많다. ‘고문관’ 짓을 하는 신병들도 대개 그런 분류에 속한다.

직장도 비슷해서, 스펙이 아무리 훌륭해도 신입은 신입이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자신만만한 청년이어도 처음 회사에 들어가면 복사를 하거나 전화 받는 예절부터 배운다. “내가 이 짓 하려고 이 직장에 들어왔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신입사원은 눈치, 재치가 있어야 한다. 상사들과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리에 앉자마다 바로 숟가락 젓가락 챙기고 컵에 물을 따라 착착 놓을 줄 알아야 한다. 삼겹살도 솔선수범해서 잘 구울 줄 알아야 하고, 상사의 빈 잔도 알아서 착착 채울 줄도 알아야 한다. 제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는 인간이라면, 빵점짜리다.

제 아무리 일 잘하고 인물 좋아도, 별 일 아닌 것 같고, 내 일 아닌 것 같은, 그런 일 때문에 ‘찍히고’ 미운 털 박힐 수 있다. 원시시대도 아니고 무슨 황당한 소리냐 싶겠지만, 선배들 속마음은 다 마찬가지다. 노래방 가서 선배가 부르고 싶어 하는 노래를 먼저 부르는 것도 모자라 그 반응이 대단했다면, 큰 실수 한 것이다. 다음날 사무실에서 선배가 돌연 냉랭한 모습을 보인다면, 간밤의 노래방 사건이 원인일 수도 있다.

삼성맨들은 또 인사 잘하고 예의 바른 후배를 두 번째로 좋아하는 후배 스타일로 꼽았다. 볼 때마다 환한 표정으로 기운차게 인사하는 후배를 싫다 할 사람이 없다. 볼 때마다 소 닭 보듯 하고 인상을 구기고 있으면, 주지 않아도 밉고, 주려다가도 만다. 후배의 밝은 인사 한 마디에 기분이 갑자기 확 올라갈 수도 있고, 그런 후배를 더 챙겨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 진짜 맞는 말이다. 상사 입장에서는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시키면 그 때마다 씩씩하게 “예,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는 후배가 예쁘다.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듣고도 못 들은 척 하는 것인지, 매사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후배 데리고 일하면, 울화통이 터진다. 그런 후배에게 좋은 점수를 줄 리 만무하다.

팀의 일원으로 함께 일할 줄 아는 후배가 세 번째 좋아하는 스타일로 랭크됐다. 요즘은 다 들 귀하게 자라서 제 것만 챙기려 들고 함께 어울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손해는 절대 보지 않으려 하고 동료나 후배, 상사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일 할 때도 그렇지만 회식을 하거나 업무 외에 팀워크를 발휘해야 할 때 함께 참여하고 앞장서는 사람이 선호되는 것은 당연하다.

일 잘 하는 후배는 4 등이었다. 결국 모르면 묻고, 인사 잘 하고, 팀원으로 참여할 줄 아는 사람이 일 잘 하는 후배보다 더 사랑 받는다는 것이다. 사실 엄격한 과정을 거쳐 입사한 신입들이기 때문에 업무 차이는 거기서 거기다. 능력보다 사람과 일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확실히 호감의 시대다. 스펙이나 능력보다는 호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펙과 능력은 기본이다. 거기에 호감을 더하는 것, 그게 우리 사회에서 원하는 진심이다. 그러니, 더 분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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