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해마다 입시철이면 화제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올해는 수능 만점자가 33명이나 된다. 수능만점을 받은 어느 학생은 방송 인터뷰에서, 고액 과외나 학원을 다니지 않고 교육방송 인터넷 강의를 중심으로 공부를 했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에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큰 돈 들인 것도 아닌데, 수능 만점이라니. 정말 대단하다. 수많은 학부모들 가슴에 찬바람이 휘몰아친다. 등골 휘도록 돈 벌어다 과외 시키고 학원 보낸 제 자식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지는 것이다.

자식이 점수 잘 받고 좋은 대학 들어간다 하면, 등골이 좀 휘고 뼈가 좀 으스러져도 괜찮다. 그게 부모 마음이다. 무거운 짐 지고 수고하는 자, 그게 부모다. 내 등골 휘고 뼈 으스러지는 것은 그렇다 치고, 별 볼일 없는 대학에 가거나 제 마음에 들지 않는 대학에 가서 평생 낑낑거리며 살 자식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해마다 입시철이면 되풀이 되는 우리들 사는 풍경이다. 거리에는 수많은 플래카드가 걸린다. 누가 어느 좋은 대학에 갔고, 어느 학교 어느 학원이 좋은 대학에 몇 명을 보냈다고 알린다. 나뭇잎 없는 나무에 그렇게 현수막들이 걸리면, 실패한 아이들이나 그 부모들 가슴에는 북풍한설이 몰아친다.

요즘은 남의 자식 입시에 대해 묻지 않는 게 예의다. 스스로 말을 해주기 전까지는 기다려 주어야 한다. 좋은 대학 갔으면 묻지 않아도 먼저 말한다. 빨리 말하고 싶어 못 견딘다.

반대로 입 꾹 다물고 있으면 눈치를 살펴야 한다. 궁금해도 묻지 말고, 그냥 참아 주어야 한다.

자식들 입시 결과에 따라 부모들 위상도 달라진다. 좋은 대학 들어간 아이들 부모는 절로 어깨를 들썩이고, 그렇지 못한 아이의 부모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다. 명품으로 온 몸을 휘감아도 자식이 입시에서 헛발질 해 버리면 그것도 다 별 볼일 없어 보인다.

명문대 보낸 엄마는 전업 주부에서 입시 멘토로 화려한 변신을 하기도 한다. 입시학원의 상담 선생님으로 전격 발탁돼 활약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를 서울대 보낸 엄마랍니다, 이 한 마디면 입시 멘토로 손색이 없다. 학원을 찾은 수많은 엄마들이 바로, 아 그러세요, 하며 우러러 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별 볼일 없어 보이던 사람도 그 자식이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하면 달리 보인다. 그 자신이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것처럼, 사람들이 존경의 눈길을 보낸다. 평소 구박을 일삼던 고약한 상사도 함부로 대하기를 멈춘다. 희한한 일이다. 희한하지만, 그렇게 된다. 희한하다.

재수를 시키려 해도 또 그놈의 돈이 문제다. 가방만 들고 학원만 왔다 갔다 한다고 재수가 되는 게 아니다. 학원에 과외까지, 돈은 돈대로 힘은 힘대로 든다. 그래서 뒤늦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 이 돈 들일 것 같았으면 미리 다 쏟아 부을 걸. 어차피 들어가야 할 돈이라면 아끼지 말고 듬뿍 듬뿍 들이부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입시를 놓고 보면 우리 모두가 항아리 속의 게들 같다. 좁은 항아리에 갇혀 서로 물고 뜯으며 아등바등한다. 어느 게가 먼저 항아리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몸부림을 친다. 하나가 올라서면 다른 놈이 끌어내리고, 또 다른 놈이 기어오르면 또 어떤 놈이 물고 늘어진다. 그렇게 아귀처럼 서로 엉겨 붙어 꿈틀댄다.

평생 써 먹지도 못할 부질없는 지식을 위해, 마음껏 뛰어놀지도 못하고 마음 편히 잠들지 도 못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위해 등골이 빠지는 부모들. 그렇게 항아리 속 게들처럼 살고 있다. 누가 이 항아리를 깨부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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