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세계순례대회’ 28일 개최

▲ 지난달 28일 열린 ‘2013 세계순례대회’에서 이해인(오른쪽에서 네 번째) 수녀와 원불교 전북교구장 김성효(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교무 등 순례자들이 ‘아름다운 순례길’에 있는 전주 전동성당 앞을 지나가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종교 상관없이 걸으며 소통
“마음이 따라가는 발의 기도”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전국의 종교인이 친구가 되기 위해 함께 240㎞ 길을 걷는 8일간의 긴 여정이 시작됐다. 지난달 28일 오전 천주교와 개신교, 원불교 등 서로 다른 모습의 순례자들은 ‘길’을 걸으며 소통하고 친구가 되기 위해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에 있는 풍남문(豊南門)에 모였다.

이 자리에는 김완주 전북도지사와 최진호 도의장, 임정엽 완주군수를 비롯해 순례대회 조직위원인 전북기독연합세계순례대표 박진구 목사와 전북기독교연합회 대표회장 김광현 목사, 전북교구장 김성효 교무, 전주교구장 이병호 신부, 이해인 수녀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김광현 목사는 순례대회의 의미에 대해 “종교는 각각 다르지만 지향하는 바는 같다. 그것은 평화다”라며 “전북의 모든 종교가 세계평화를 위해 손잡고 나섰다. 순례대회가 세계평화를 구현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3 세계순례대회(World Pilgrimage Festival)’의 개막을 알리는 상생의 종소리가 전주시에 울려 퍼지며 순례길이 시작됐다. 아름다운 순례길의 마스코트인 초록색 달팽이 ‘느바기(느리고 바르고 기쁘게)’가 그려져 있는 손수건을 목에 두른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순례자들은 전주를 대표하는 상징물인 풍남문을 원점으로 순례를 시작했다.

▲  ⓒ천지일보(뉴스천지)
전주를 대표하는 사대문 중 유일하게 현존하고 있는 풍남문(보물 제308호)은 고려 공양 왕 원년(1389)에 남문으로 창건됐으나 영조 43년(1767) 불에 타 다시 중건한 뒤부터 풍남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이 문은 천주교와도 인연이 깊다. 1791년 신해박해 때 유교식 조상제사를 거부한 한국 천주교 최초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이 대역부도죄로 이곳에서 처형당했다.

풍남문의 의미를 되새긴 순례자들은 한옥 마을을 지나 다음 성지인 전동성당(지방문화재 제178호)으로 향했다. 순례단 안내자를 필두로 귀빈들이 손을 잡고 걸었다.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김성효 교무는 “늘 이 손을 잡고 있었고 앞으로도 잡을 것”이라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전동성당에 도착한 순례자들은 건물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비잔틴(Byzantine) 양식과 로마네스크(Romanesque)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은 우아한 자태로 방문객을 반겼다. 천주교 신자로 보이는 안내자는 건물 안에 들어온 순례객에게 성당에 얽힌 역사를 설명했다.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지어진 성당 은 서울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설계해 1914년 완공됐다. 신유박해(1801) 때 순교자 유항검과 유관검 형제 등이 교수형을 당했다. 이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프랑스인 보두네 신부가 부지를 사들여 성당을 지은 것.

아름다운 성당을 뒤로하고 순례객은 원불교 교동교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원불교 신자가 두 손을 흔들며 이들을 환영했다. 순례객도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걷는 내내 순례객은 손을 놓지 않았다.

김성효 교무의 손을 꼭 잡은 이해인 수녀는 “원래 순례의 의미는 마음이 함께 따라 가는 발의 기도”라며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우정을 나누면서 친구의 마음으로 세계평화를 기원하면서 걷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걷기 행사를 통해 종교 간 대화가 말이 필요 없이 이뤄지는 좋은 기도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수녀는 대장암을 이기고 시인으로 활동하며 사람들 에게 희망을 전해 대학생이 존경하는 인물로 뽑힌 바 있다.

전주의 동쪽 길목 끝에 있는 한벽당에 순례자들이 도착했다. 전주 승암산 기슭 발산 머리의 절벽을 깎아 터를 만들어 세운 누각에서 바라본 전경은 전주에서 8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자랑거리다. “우와… 이곳이 명당 이네!” 한 순례객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한벽당 앞에는 어깨동무하고 있는 산과 곡선으로 휘어져 S자 몸매를 뽐내는 강이 태양에 반사돼 빛나고 있다. 한벽당은 원불교 교조 인 소태산 대종사가 창립총회를 앞두고 제자 송적벽의 소개로 초창기 교단의 중추적 역할을 한 조송광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이어 순례객들은 인적이 드문 길로 들어서며 본격적인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길 좌우에는 추수 때를 기다리는 곡식과 주렁주렁 열려 있는 호박, 빨간 고추 등 시골에 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순례객들의 눈에 들어왔다.

원불교 친구와 함께 순례에 도전한 이정애(57, 여,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씨는 “오랜만에 시골풍경을 볼 수 있어 감회가 새롭다”며 “종교는 다르지만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 걸으니 더 행복하다”고 소감을 말 했다.

▲ 순례자들이 ‘아름다운 순례길’을 걸으며 미소 짓고 있다(왼쪽). 원불교 교동교당 앞을 지나는 참가자들(오른쪽). ⓒ천지일보(뉴스천지)
참가자 중에는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 등 청소년들도 눈에 띄었다. 개신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유찬식(17, 독산고) 군은 힘들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힘들지 않다. 혼자 걷기 힘든 엄마를 돕기 위해 나온 것”이라며 “천주교인 엄마와 종교가 달라도 순례대회를 통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 보람차다”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종교 화합 한마당… ‘상생의 풍등’ 띄어

‘아름다운 순례, 홀로 또 함께’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이 행사는 5일까지 계속된다. 마지막 날인 5일에는 순례에 참석한 청소년들이 참석 소감을 나누며 소통하는 자리인 청소년 포럼이 개최된다.

같은 날 전라북도청 광장에서는 ‘순례한 마당’이 펼쳐진다. 다양한 종교인들이 나서 예술 공연, 음악회 등 볼거리를 제공한다. 세족식, 대담을 통해서는 ‘순례’의 의미를 되새겨볼 예정이다. 폐막식은 이날 저녁 6시 40분부터 7시까지 개최되며, 이때 순례대회 사전접수자들은 ‘상생의 풍등’을 띄어 종교 간 화합을 기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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