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멋진 축구는 어떤 축구일까. 개인기술이 월등하거나 조직력이 뛰어난 축구다. 남미 축구가 전자요, 유럽 축구가 후자다. 개인기와 조직력 중 어느 하나라도 갖춘다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낸다면 더욱 금상첨화.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도 ‘테크닉 축구’와 ‘시스템 축구’가 숙명적으로 충돌하며 멋진 경기를 보여줄 것 같다.

‘뻥축구’로 회자되는 한국 축구는 어떤가. 지향하는 점이 아무래도 후자 쪽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 우리에겐 현란한 테크닉을 갖춘 선수가 많지 않다. 어릴 때부터 잔디구장이 부족해 미끄러운 맨땅에서 뛰다 보니 개인기를 다듬기가 쉽지 않다. 또한 수비형 축구가 대세다. 단독 드리블을 길게 하다 볼을 뺏기는 선수는 감독에게서 볼을 너무 끌지 말라는 따끔한 주의를 받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전후반 0대 0 승부가 많다. 고질적인 학벌주의, 연고주의도 아직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척박한 토양에서 축구천재가 나오기는 어렵다. 

박지성이라는 스타가 나온 것은 왜인가. 2002 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당시 ‘연세대냐, 고려대냐’라며 출신을 따져 국가대표를 선발하던 파벌주의를 과감히 혁파한 데 따른 것이다. 이청룡과 손흥민은 다니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프로에 뛰어들어 선진축구에 적응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창의적인 축구를 한다는 점이다.

코앞에 닥친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이 좋은 성적을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팀워크를 강화해 부족한 테크닉을 극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개인기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니 조직력으로 전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무래도 2% 부족하다. 즉 우리 선수들이 개인 기량을 독창적으로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하지 않을까 한다. 순간 동작이 민첩한 선수들이 있다. 키 작은 한국 선수들은 반박자 빠른 패스와 순발력이 큰 무기다. 한국이 내년 6월 키 크고 몸값 비싼 외국선수들을 농락하며 내로라하는 세계 축구 강호들을 차례로 격파하는 역사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 지난달 27일 프로야구 롯데와 삼성 경기에서 있었던 해프닝. 롯데 김사훈 선수가 타석에서 공을 치고 나갔으나 1루에서 아웃됐다. 주루코치가 “공에 맞은 것 아니냐”고 타자에게 물었고, 이에 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랬을까. 파울 볼로 처리될 상황을 침묵으로 덮어버린 이유는. 공이 다리에 맞았으니 파울이라고 심판에게 항의라도 한 번 해보았으면 어땠을까. 만약 타자가 신참에 속해 주눅이 들어 제대로 말 한마디도 못한 것이라면 아쉽다.

야구 경기가 끝나면 중계팀이 수훈선수와 인터뷰를 한다. 이때 선수에게 소감을 물었을 때 으레 듣게 되는 대답이 있다. 그것은 “타격코치님이 지도해주신 대로 했더니 안타를 치게 됐다”거나 “투수코치님이 던지라고 하는 대로 던졌더니 호투하게 됐다”는 말. 이 같은 내용의 인터뷰가 시즌 내내 계속 반복되는 데 대해 시청자들은 쓴웃음을 짓고 만다. 도대체 성인 야구선수가 코치가 하라는 대로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로봇이 돼서야 되겠는가.

이쯤 되면 팀 분위기를 짐작할 만하다. 염려스러운 점은 단체운동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엄혹한 위계질서가 개인의 창의적인 기량 발휘를 가로막으며 팀을 짓누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면 그들은 덕아웃에서도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 자유롭게 대화를 나눈다. 야구 경기를, 혹은 인생 자체를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이 느껴진다. 몸이 릴렉스돼야 제 기량을 발휘할 텐데 그들과 달리 한국 선수들은 얼굴부터 너무 경직돼 있다. 선수들이 감독이나 선배 눈치 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

# 때마침 가을야구철,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남긴 말이 가을바람처럼 다시 가슴에 다가온다. 그가 감독으로 선임된 2008년부터 부산 롯데는 5년 연속 4강에 진출했다. ‘노 피어(No fear)!’ 투수가 마운드에서 흔들릴 때, 타자가 슬럼프에 빠져 위축돼 있을 때 그가 선수들에게 해준 말이다. 두려움을 떨치고 제 기량을 마음껏 펼치라는 뜻이었다. 감독이 이처럼 멘탈 쪽에서 선수에게 힐링을 안겨주는 것도 뛰어난 용병술의 하나가 된다. 미군이 중동에서 생명을 담보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유있게 골프를 즐기던 미국 대통령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국정운영이 철저히 시스템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만큼 미국인은 각자 맡은 자리에서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뜻이 담긴 리더십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인사권자라면 얼굴 ‘관상’ 보는 법이라도 배워둬야 할 일인가. 감사원장, 검찰총장, 보건복지부 장관이 잇따라 중도 사퇴하면서 박근혜정부의 인사난맥상이 드러났다. 이정현 홍보수석이 ‘채동욱 검찰총장은 이명박 정부가 지명한 검찰총장’이라고 단호히 못 박을 때부터 이미 파동은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신과 항명 사이의 곡예. ‘벤치 사인’을 외면한 ‘위험한 드리블’이 교체 카드를 부른 것이라 해도 현 정부의 ‘소통 부재’에는 진실로 위기의식이 요구된다. 걸핏하면 전통시장이나 찾는 쇼맨십은 더 이상 감동을 주지 못한다. 지금 어리둥절해하는 국민을 이해시킬 수 있는 조화로운 국정 운영 리더십이 절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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