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님!
중책에 보임된 것을 뒤늦게나마 지면을 통해 축하드리면서 고언(苦言) 좀 드릴까 합니다. 미국인들은 70대의 아름다운 황혼에 재선에까지 성공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목소리를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매주 라디오를 통해 각종 정부 정책에 대해 국민을 섬기는 낮은 자세로 설명해준 친절하고 겸손한 대통령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는 목소리와 외모가 매력적이었던 덕도 보았다고 하지만, 또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찾아내는 달인이었다고도 하지 않습니까. 미국의 장한 어머니들, 학업에 전념하는 학생들, 용감한 군인들, 훌륭한 노인들의 이름을 라디오에서 차례로 거명하며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우리 사회의 평범하면서도 진정한 영웅들을 찾아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고 사랑을 주고받는 대통령이 되도록 보좌해주기를 바랍니다.

김 비서실장님! 한국정치사에서 용병술의 달인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꼽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명암(明暗)은 있습니다. 그 영향으로 한국이 ‘관료공화국’으로 불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당시는 대중을 이끄는 소수 엘리트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였지요.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대중중심 정치문화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제3공화국 때 신봉한 ‘엘리트정치’ ‘박사행정’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아쉽습니다. 공직자 등용에 ‘스펙’을 너무 따집니다. 공무원 5명 중 1명이 박사, 2명이 석사라고 하지 않습니까. 기업체에만 주문할 일이 아니구요, 고교 졸업자도 떳떳한 공직취임 여건이 마련되도록 정부 부처부터 솔선수범해줬으면 합니다. 링컨과 에디슨이 그랬듯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 인생 경력이 온실서 키운 화초 같은 석‧박사 학위나 경직된 관료제보다 못하란 법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공공기관장은 물론, 개방직에까지 정치인이나 ‘철밥통’ 공무원들의 나눠먹기식 집안잔치가 계속될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를 바라보는 민초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학위나 전문성도 기준이 되겠지만 지혜롭고 창의력 넘치는 고졸 학력의 인재도 널리 구해 천거해주기 바랍니다. 언젠가 다음과 같은 톱뉴스가 기사화될 날을 기대해 볼 수는 없을까요. 

‘국가정보원장에 고졸 모범 택시기사 발탁. 농림축산부 장관에 시골 토박이 농축산인 등용,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재래시장 30년 자영업자 임명, 보건복지부 장관에 베이비시터 임명…’

김 비서실장님! 체감 경기가 어느 때보다 심각합니다. 자녀교육비, 세금문제, 전세대란 등이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쳐 부모들은 허리가 휠 정도로 힘들지요.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서민들은 올여름 맹위를 떨친 기록적인 폭염처럼 참을 수 없도록 짜증과 화가 나 있는 실정이구요. 돈이 돌지 않아서 문제죠. 우선 자금력 있는 개인과 기업이 장롱 속의 현금과 사내유보를 꺼내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고소득자는 세금을 더 내도록 하고 중산층과 서민의 경우는 각종 세율을 더 내려야 합니다. 지하경제양성화를 위해서도 검찰수사나 세무조사와 같은 규제일변도의 ‘강풍’에 병행해 자금이 활발히 순환되도록 유도하는 ‘햇볕정책’도 함께한다면 더 효과적일 수 있을 테니까요.  

김 비서실장님!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했던 노태우정부의 검찰총장으로 사회악 척결에 앞장섰던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 후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네요. 그런데 일각에서는 한탕주의가 여전합니다. 크게 한 건하고 잠시 감옥살이하다 구속집행정지 등으로 풀려나 평생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것이죠. 기업인 정치인들은 왜 멀쩡하게 활동하다 구속만 되면 중환자라며 풀려날까요. 법원의 독립된 석방결정이니 어쩔 수 없다는 건가요. 현재의 사법 시스템은 과연 국민법감정과 거리가 없는 것일까요.
 
만일 사법부나 입법부가 국민을 외면하고 ‘독재’를 한다면 누가 어떻게 통제하나요. 공직자 비리를 사정(司正)기관이 감시하고 있다면 사정기관에 대한 사정은 누가 하나요. 정치권도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불통(不通)정치, ‘반대를 위한 반대, 찬성을 위한 찬성’만을 고집하면 국민은 참다못해 고개를 돌립니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말한 ‘정치적 무관심’이 파급되면 누구에게 좋은 일이 될까요. 우리 사회는 얼마나 상식이 통하는 사회, 얼마나 정의로운 사회일까요.

김 비서실장님! ‘언로(言路)가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울부짖던 조선 유생들의 상소와 군왕 앞에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직언을 간(諫)하던 언관(言官)들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상의하달뿐만 아니라 하의상달도 중요할 것입니다. 귀에 거슬리는 말도 폭넓게 수렴해 그대로 대통령에게 전해주십시오. 말 많고 까칠한 재상 위징(魏徵)을 등용했던 중국의 당태종은 “세찬 바람이 불어야 억센 풀을 알 수 있고 나라가 혼란스러워야 충신을 알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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