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요즘 들어 폐지 줍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부쩍 늘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땡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로 리어카를 끌고 다닌다. 푹푹 찌는 무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을 바라보노라면 그동안 살아온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휜 등뼈에 얹혀 있는 것 같이 느껴져 안쓰럽다. 날짜 지난 신문을 수거하러 꼬부랑할머니가 필자 사무실을 자주 들른다. 이 분은 사실 혼자서는 걷기도 힘든 몸이다. 할머니는 폐지 박스를 끌어안고 사무실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흐르는 땀을 식히며 잠시 쉬었다 가기도 한다.

“할머니, 몸도 불편하신 데 힘든 일까지 하시네요.”

말을 붙여보았다. 잠깐 나눈 대화 덕에 올해 칠순인 그 분의 눈물겨운 인생사 애환을 전해 듣게 됐다. 할머니는 아들이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해왔다. 열심히 일한 끝에 아들 딸 둘을 낳고 그런대로 잘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몇 년 전 부도가 나 생활이 엉망이 됐다. 아들은 거의 폐인이 돼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 날 며느리도 가출을 해버렸다. 할머니는 혼자 월셋방에서 중학생 손자와 초등학생 손녀를 키워야 했다. 동사무소에서 받는 생활보조비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라 직접 생활전선에 나선 것이었다.

#추위가 맹위를 떨친 지난해 말. 영등포역에 열차를 타러 갔다가 뜻밖의 화장실 풍경에 깜짝 놀랐다. 노숙자 수십 명이 화장실 라디에이터를 겹겹이 에워싸고 또아리를 튼 뱀처럼 누워 있는 것이었다. 역과 백화점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에도 강추위를 피해 찾아온 노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상당수가 노인들이었다. 다들 사연이야 있겠지만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는지, 또한 자식이 있다면 부모가 그 추위에 어디서 언 몸을 녹이며 겨울을 나는지 알기는 아는지 궁금했다. 문득 송강 정철의 시조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 곳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같은  가없는 은덕을 어떻게 다 갚을까(…중략)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도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훈민가 옮김)’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65세 이상 노인이 지난해 542만 명으로 인구의 11.8%나 된다. 2030년에는 24%로 비율이 높아져 인구 4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가 될 것 같다고 한다. 수명이 늘다 보니 병원은 무릎 허리 관절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정형외과가 많아졌다. 치과에도 점점 노인 고객이 늘고 있다. 문제는 자녀들이 장성해도 노인을 제대로 돌볼 만큼 우리 사회의 생활 여건이 녹록치 않다는 데 있다. 필자가 아는 한 사람은 아파트 경비실에 근무하는데 월급이 80만 원선에 불과하다. 늘 이를 불만스러워했다. 그런데도 경비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유는 두 아들이 실업자가 돼 집에서 뒹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힘들여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켜줘도 노인에게 되돌아오는 것이 없다. 독거노인, 버려진 노인이 수두룩하다. 그러다 보니 국회에서는 ‘효도특별법’까지 거론되고 있다. 효(孝)를 법으로 강제해야만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한때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을 들었던 나라 아닌가. 혹시라도 부모를 헌신짝처럼 외면하는 ‘고려장(高麗葬)’ 국가의 오명을 얻는다면 큰일이다.

#건강한 노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 개인택시기사에 따르면 택시 운전대를 잡고 활동중인 어르신 중에 80대, 90대도 꽤 있다고 한다. 단골로 다니는 동네 이발소는 60대 중반 노(老)부부가 운영한 지 오래다. 쬐그마한 공간에서 할아버지가 머리를 깎고 세면을 도우며 할머니는 턱수염 면도를 맡는다. 하루에 손님이 족히 40명 이상은 될 것 같다. 점심은 손수 싸온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인건비도 두 사람 외에 더 들 게 없다. 이발비가 1만 원이니 한 달 수입이 대략 계산된다. 수요일은 입구에 ‘금일 휴무’ 팻말이 내걸린다. 부부가 교회에 나가 기도하고 봉사활동에도 참여하는 날이다. 건강한 노부부의 평범하면서도 값진 이모작 인생이다. 이들처럼 기술을 익히고 함께 노력한다면 노후 걱정은 문제없다.

성공적인 노인의 삶에는 조건이 있다. 스스로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 노숙자들처럼 심신이 피폐해져서는 불가능하다. 작금 ‘뜨거운 아이스크림’ 이니 ‘거위 깃털 뽑기’라는 말과 함께 ‘복지 증세’ 논란이 한창이다. 어르신들은 대우받아야 한다. 일제 때 갖은 고초를 겪었고 해방과 6·25를 거치면서도 뜨거운 교육열과 남다른 희생정신으로 자식들을 키워 오늘날 ‘한강의 기적’과 ‘한류’를 일으킨 주인공 혹은 감독들이다. 하지만, 정작 건강한 노인들은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땀과 노동이라는 아름다운 ‘대가(代價)’를 지불하고 몸소 수확의 기쁨과 여유로운 저녁을 즐기고 싶다. 당당한 노인들이시여, 애써 ‘공짜’를 사양해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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