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 근대화의 주역’ ‘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방증하듯 현대경제사와 궤를 같이한 한국의 대표 기업가다. 아산이 일군 현대그룹은 자동차와 조선, 건설, 유통, 자재, 금융 등 주요 산업을 아우르는 글로벌 기업들로 성장해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한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90년대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대표이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대전자에도 몸 담았던 박광수 칼럼니스트가 올해 75주년을 맞은 현대그룹을 파헤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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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2022.11.18

 

<28>현대그룹의 백화점 사업 창업

세계 최초 백화점 ‘佛르 봉 마르셰’

구매·서비스 등 획기적 환경 제공

상류층 여성 고객 단번에 사로잡아

 

1930년 日 ‘미쓰코시’ 경성 상륙

박흥식 ‘화신상회’로 일본인과 경쟁

해방 후 소공동에 롯데백화점 개점

현재 31개 점포, 국내 百 1위로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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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전경. (제공: 현대백화점)

 

백화점은 단독건물의 외관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건물 내의 각층 마다 색다른 아이템을 차별화해 전시한다. 주요 고객(주로 부유층 여성들)이 본인 취향에 맞는 최고급 제품들을 한 장소에서 쇼핑한다. 백화점이란 용어는 주요 고객이 자기 과시용으로 카드를 남발하면서 한 손에 여러 개의 제품을 담은 쇼핑백을 들고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고급승용차를 타고 자택으로 귀가하는 ‘원스톱 구매’를 가능해지도록 만든 마케팅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특히 백화점은 정가를 부착해 고객들이 가격을 확인하고 본인 스타일에 맞는 옷을 구입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하며, 연 최대 4회 바겐세일 시에만 정찰가격에서 할인해 판매하고 있다. 또 세계적인 고급 브랜드(핸드백, 지갑 등)를 총망라해 전시하면서 고객들의 마음을 백화점으로 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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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르 봉 마르셰’

◆세계 최초의 백화점 ‘르 봉 마르셰’

일반적으로 백화점 내부로 입장하면 일단 외부를 볼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백화점은 오로지 쇼핑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돼 있고, 함께 온 남성들은 일정 공간에 마련된 휴게시설에서 여성들이 쇼핑을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백화점의 역사를 살펴보면 세계 최초의 백화점은 1852년 프랑스 파리에서 오픈한 르 봉 마르셰(Le Bon Marche)이다. 이 백화점은 아리스티드 부쉬코( Aristide Boucicaut) 부부가 남성 중심 매장을 많은 상품을 구매하는 여성 중심 매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콘셉트의 획기적인 매장을 탄생시켰고, 의식주와 관련된 각종 상품을 한 장소에 모아놓고 고객들이 제품에 부착된 브랜드 라벨을 비교하며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즉 정찰제 도입, 현금 판매, 제품교환 및 환불 보장, 바겐세일, 클래식 콘서트, 청결한 화장실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정책으로 고객들에게 편리한 쇼핑 환경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상류층 여성들을 끌어들였다.

르 봉 마르셰 백화점은 여성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화려하고 세련된 실내장식을 적용했다. 에펠탑으로 유명한 구스타프 에펠(Gustave Eiffel)의 철강 내부 설계와 루이 부알로(Louis Boileau)의 우아한 유리창 디자인 등이다. 또 판매직원들의 고객 응대 교육으로 고객들의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잡았다. 특히 친절하도록 교육받은 직원들에 고객들은 대접받으며 쇼핑을 즐긴다는 느낌을 받았고, 단기간에 단골손님이 됐다.

즉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르 봉 마르셰 백화점은 주요 고객층인 여성 고객들을 현혹해서 이성을 마비시키는 환경을 의도적으로 연출해 소비 욕구를 부추겼다고 한다.

특히 백화점의 각 층은 방향감을 잃도록 설계돼 있었고,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매력적인 상품들이 곳곳에 가득히 전시돼 있었다. 또 고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사치품은 쉽게 손에 닿을 수 있는 동선에 배치했다. 그래서 고객들은 강렬한 유혹에 이끌린 채 자신도 모르게 대량 소비하며 욕망을 채워 나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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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2022.11.18

◆韓 최초 백화점 ‘미쓰코시 경성점’

당시 르 봉 마르셰는 고급스러운 매장을 만들기 위해 유리로 상품을 예쁘게 진열한 쇼윈도, 구석구석 공간 없이 채워진 매장 배치,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화장실과 다양한 예술작품의 인테리어로 고객들을 만족시켰다. 

그리고 많이 판매하는 전략으로 저렴한 상품을 미끼로 고객들이 매장을 방문하게 만들고, 고객들이 빈손으로 귀가하지 않도록 더 큰 소비를 유도했다. 

또한 각층에 고객들이 잠시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을 설치해서 쇼핑 도중 피곤함을 느낀 고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으며, 특정한 날에는 연주회와 무도회를 개최하며 사교의 장이 가능해지도록 했다.

따라서 백화점은 단순히 필요한 물품의 구매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부르주아들의 여가활동의 장소가 됐다. 또 최상층에 고급식당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전망을 즐기며 식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특히 창립기념일에는 최상류의 단골들만 초빙하고, 유명 가수들을 초청해 노래와 가무를 제공했다.

미국에는 1858년에 설립된 메이시(Macy)가 효시이며, 영국에서는 1863년에 설립된 휘틀리(W.Whiteley), 독일에서는 1870년에 설립된 베르트하임(A,Wertheim)이 최초의 백화점이다.

동양에서는 일본의 미쓰코시 백화점이 효시로서 1673년 지금의 동경인 에도(江戶) 포목상으로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미쓰코시 백화점은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를 대표하는 상인 가문이자 일본의 3대 재벌에 들어가는 미쓰이가(三井家)에서 190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또 동경 니혼바시 본점(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이 1914년에 건축돼 오픈함으로써 모습을 갖추게 됐다.

미쓰코시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06년경 서울에 임시 출장소를 개설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1916년에 일본인들이 집단 거주하던 ‘혼 마치’라고 불리던 지금의 서울 명동에 3층 200평의 지점을 오픈하고 본격적인 영업을 하면서 현재의 백화점 형태를 갖추게 됐다.

1930년 10월 24일에 철근콘크리트 4층 건물로 개축해 경성 미쓰코시 백화점이 탄생했다. 1층에는 화장품, 신발 구두 등을 판매했고, 2층에는 일본 전통의 의상, 3층에는 서양 의상을 판매했다. 4층에서는 귀금속과 가구 등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당시 경성(현재 서울시)에는 경성 미쓰코시, 조지아, 하라다, 미나카이, 화신 백화점 등이 영업하고 있었다.

이 중 경성 미쓰코시가 한국의 최초 백화점이다. 미쓰코시 경성점은 조직화한 영업 및 관리를 받다가, 동화백화점으로 바뀌었다. 1945년 해방 이후 동화백화점은 미군정에 소속됐다가 1958년 조선방직으로 인수됐다. 또 1962년 동방생명에서 인수했으나, 1963년 동방생명이 삼성그룹으로 매각돼 신세계백화점으로 상호가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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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개점한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제공: 현대백화점)

◆현대百 총 16개 점포… 연매출 1조원대 5개

한국의 현대식 백화점은 일제 강점기 조선 최대의 갑부인 박흥식이 1929년 9월 종로2가에 설립한 화신상회였다. 이 건물이 1934년 화재로 전소하자, 1935년 신축해 화신백화점으로 탄생하면서 일본인 백화점들과 경쟁했다.

해방 이후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가 롯데백화점을 1979년 서울 중심지 소공동에 지으면서 본격적인 백화점 경쟁 시대를 열어 갔다. 롯데백화점은 국내백화점 67개 중 가장 많은 31개 점포를 운영하면서 2020년 기준 매출 점유율 36.3%를 차지하는 국내 1위 백화점이다. 

국내 2위 백화점은 신세계백화점으로서 대형유통업체인 이마트가 신세계그룹의 중요 매출 회사이다. 3위는 현대백화점으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인 정몽근 회장은 평상시 유통사업에 대한 관심을 두고 사업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부친인 정주영 회장에게 유통사업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보고한 뒤 독립해 사업하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 결과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건축하고 남은 노른자위 토지(압구정역 부근)에 명품 브랜드 위주의 현대백화점(영업 면적 9585평)이 1985년 개점했다.

당시 이 백화점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부들이 메인 고객이 돼 주변 반포, 논현, 청담, 잠원, 역삼, 삼성동 거주 강남 부유층들이 고가의 명품을 구입하러 몰려온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후 전국 주요 도시(총 16개 점포로 연 매출 1조 이상 점포 5개)에 현대백화점을 개설하면서 본격적인 유통사업화의 길에 나서게 됐다. 또 요즘 부각되는 친환경에 맞춘 전략으로 폐지를 활용한 친환경 쇼핑백(황색칼라) 제공으로 고객들의 사랑을 받고 급성장했다.

쇼핑백은 고객이 직접 들고 다니면서 외부에 자연스럽게 고급 백화점 이미지를 알리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현대백화점의 걸어 다니는 홍보 역할을 톡톡히 했다.

현재는 장남인 정지선 회장(1972년 10월 20일 출생, 경복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사회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영재 출신)이 그룹의 회장으로서 경영을 탁월하게 운영하고 있다. 특히 사업을 다각화하고 2030년 총매출 40조원을 목표로 국내 1위 유통업체로 부상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대형마트 개설 등)을 추진 중이다.

(정리 = 유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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