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요즘 들어 자신의 몸 건강을 위해 피트니스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여름 대낮에 운동하러온 사람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온갖 기구를 이용하여 체력을 다지는 데 열중이다. 그 가운데 일부 여성들은 자전거 페달 밟기 다리 근육 강화운동을 하면서 신문을 보고 있다. 운동하는 사이 무료한 시간 때우기인지, 아니면 지식과 상품 정보를 얻고자함인지는 몰라도 신문철을 통째로 핸들 대에 올려놓고 꽤나 열심히 기사를 읽는 장면이 특이해 보인다.

그 이유가 어떻든 간 신문 친화적이어서 좋다. 한때 신문이 한자와 혼용되던 시절에 신문을 읽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한자 익히기였다. 필자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한자시간이 따로 있었는데, 그 때 선생님은 “신문읽기가 한자 공부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 일러준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러나 이젠 한자가 상용되지 않다보니 글자의 익힘보다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각종 지혜와 정보를 얻거나 정신적 영역을 키우는 데 활용하는 신문구독자들도 많다.

처음 신문 구독을 한 게 언제였던가? 생각해보니 40년이 더 된다. 지금도 몇 종류 신문을 구독하고 인터넷신문을 접하지만 신문의 유용성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필자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신문이 사회나 그 구성원 개개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다대하다. 지금까지 느낀 바를 말한다면, 하루하루 신문을 만들어내는 기자들과 임직원들의 현실적인 노력은 무용의 얼음덩어리를 작은 옥구슬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라 해도 틀린 게 아니라는 믿음을 가진다.

신문의 가치는 위대하다. 지난 시절 신문은 국가권력이 휘두르는 언론 핍박을 용케도 견뎌내고 불의에 저항하면서, 사회정의를 지켜낸 언론인들의 희생 위에서 언론의 가치를 드높여왔다. 그러기에 많은 독자들과 국민은 이 땅의 민주주의의 대들보인 신문을 믿으며, 언론의 편이 돼왔다. 이는 신문이 사회의 공룡으로 자처하는 게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며, 성실하게 사는 자들의 편에 서서 정의를 구현한다는 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지금 한국신문의 환경을 둘러싸고 ‘가치 창출의 실패’라는 말이 나돈다. 바야흐로 인터넷시대에 버틸 구석이 없는 종이신문이라는 왜곡현상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외의 환경적 문제다. 정치·경제 권력을 비호하고, 경영권에 침식당하며, 잇속에 갈피를 못 잡는다면 독자들이 바라는 언론의 바른 가치 구현은 물 건너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이 보수·진보의 지향으로 각자 주장을 피력하는 것은 이해한다해도, 정상이 아닌 궤변으로써 사회현상을 왜곡하고 민심을 이반시키려는 의도는 언론의 가치와 신문의 진정성과 확장성을 차단하는 발목잡이가 된다.

필자는 본지 논설위원으로 있다. 그렇지만 신문사 밑바닥부터 경험한 언론인이거나 기자 출신이 아니다. 다만 신춘문예로 시단에 등단하여 오랫동안 글을 써왔고, 직장 또는 전문적 분야에서 경험을 익혔다. 중앙행정기관에 몸담은 30년 세월 넘게 지방자치와 지역개발 등 종합행정을 수행해왔고, 경험과 지식에 기한 수백 편의 칼럼을 지역신문, 지방신문에 연재하는 동안 글의 위대함과 언론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기도 했다. 한때 정당의 중책에 종사하면서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내몰고 바른 정치의 당위성을 깨치느라 힘쓴바 있지만 지난날의 이야기다.

인생은 때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정치의 길과 인연을 매듭지우며 족적을 지우기 위해 모 인터넷신문에 칼럼 100회 연재를 약속했고, 죽기 살기로 글을 써서 4개월 만에 끝맺었다. 그게 계기가 되어 신문사 근무 경력 없이 본지의 논설위원이 된 것은 글쓰기 좋아하는 내겐 행운이었다. 글 씀이 전문이라해도 작문의 어려움은 차치하고서라도 쓴 글에 대해 무한 책임을 느끼는 심정은 홀로 걷는 새벽길처럼 신선하지만 두렵고 외로운 길이다.

창간 4주년을 맞이한 천지일보는 전국종합일간지 13개 중 하나다. 아직 걸음마단계다 보니 더러는 모르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신문의 참 가치를 알고 언론인의 무한 책임을 느끼며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향기 나는 신문이다. 천지일보(인터넷 ‘뉴스천지’)는 보수나 진보가 아닌 중도 개혁을 표방해오면서 국민의 생각과 의식을 깨우며 미래를 열어가는 정론지다. 범람하는 정보화 시대에 꼭 필요한 소식, 유익한 소식, 물질보다는 정신문화를 선도하면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언론’을 실제로 구현하는 신문이며, 영혼이 담긴 소신 있는 언론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독일 태생의 경제학자 슈마허의 말처럼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클린미디어가 천지일보다. 필자는 여기에 ‘아침평론’과 ‘시사카툰’ 그리고 사시(社是)를 전하는 고정 글을 쓰면서, 항상 독자들이 유용한 가치를 전수하는 데 소용되기를 바라는바, 본지에 마음과 몸을 담은 임직원들도 다들 그러하리라. 필자는 이상을 위한 웅혼(雄渾)의 글을 북돋우는 계제를 준 천지일보가 좋다. 그보다 본지가 더 좋은 진짜 이유는 면면마다 인간의 향기가 가득 묻어나는 ‘작지만 아름다운 신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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