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빈자리

서정태(1923~  )

누가 와서 묻거든
없더라고 전하게

세월은 가고 먼 훗날
또 와서 묻거든
지금까지도 비어 있더라
전하게

[시평]
모든 것을 초탈한 삶. 과연 이런 삶이 가능한 것인가. 모든 것을 초탈하여 세상과 모든 것을 끊어버릴 수 있는 삶. 이런 삶 과연 가능한 것일까. 오랜 동안 세상과 등지고 살다보면, 스스로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인가.
노시인은 세상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다. 그 형 되는 미당 서정주 시인은 세상에 회자되는 너무나도 유명한 시인이다. 미당에 비하여 세상과 멀리 산 한 노시인. 진정 세상과는 인연을 끊고 시나 쓰며 살아가는 노시인. 누가 와서 묻거든 ‘없다고’가 아니라, ‘없더라고’ 전하라고 한다. 세월이 가고, 그래서 먼 훗날 또 와서 물어도 지금까지 ‘비어 있다고’가 아니라, ‘비어 있더라고’ 전하라고 한다.
이미 없어졌다고 여긴 지 오래인 자신의 생. 그 빈자리에 앉아, 오늘도 세상 예의 바라보고 있을, 아아 노시인의 허허로움이여.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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