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입

이수익(1942~  )

입을 봉하라. 당신의
풀렸던 정신을 꽁꽁 옭아 매고 이제는
마음을 단속하라. 그동안 너무 많이
지껄였으니, 텅 빈 구석 더러 생길 법
했을 듯.
입을 봉하라, 차라리 그전이 더욱 그리웠던 것처럼
최초의 이전으로
돌아가라.
보다 더 커다란 믿음이 당신을 누르고서 지배할 수 있도록
어둡게, 끝이 보이지 않도록
멀어져라. 당신의 눈과 귀와 입이
온통
허물어질 때까지

[시평]
사람이 살아가면서 서로의 소통을 위하여 말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과 어울려 자신도 모르게 너무 많은 말을 한 날은 돌아오는 그 길이, 그 시간이 왠지 씁쓸할 때가 있다.
그래서 때로는 스스로 입을 봉하고 싶은 날이 우리에게는 있다. 그래서 최초의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이 우리에게는 있다. 그리하여 말이 주는 신뢰보다 더 큰 믿음이 우리를 누르고 지배하기를 바라는 날, 또한 우리에게는 있다.
말이 말을 하고, 말을 낳고, 또 말을 만들어 말을 하고, 알 수 없는 말들에 싸여 지껄이다가 돌아오는 저녁. 말없이 물끄러미 내려다만 보는 하늘의 별들. 왠지 부끄럽고 또 씁쓸함. 그러한 저녁, 불빛에 드리운 우리의 그림자, 왠지 더욱 깊고 길게만 일렁이누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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