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이영복 종법사

 

▲  이영복 종법사.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이길상 객원기자] 지난 14일 천도교미술인회는 제150주년 지일기념일을 맞이해 ‘천도교미술한마당전’으로 제23회 천도교미술회전, 제9회 천도교 어린이 학생미술대회. 제3회 원로작가 특별초대전을 개최했다. 특히 원로작가 특별초대전에는 천도교 안팎에서 존경을 받고 있는 이영복 종법사(천도교 최고 직분)의 작품이 전시됐다. 이영복 종법사는 올해 92세다. 그럼에도 천도교 중앙대교당에 행사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또한 캠코더를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직접 촬영을 하며 역사의 현장을 영상으로 담고 있다.

이영복 종법사는 1977년 56세 되던 해에 천도교 교령에 당선됐고, 3년 후인 1980년 교령에 재선돼 6년간을 재직했다. 그는 평생을 천도교에 몸을 담았다. 천도교의 산증인인 이 종법사에게 천도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에 관해 들어봤다.

― 원로작가 특별초대전에 관한 소감은.
고맙고 감사하면서도 부끄럽다. 전시회는 생각도 못 했다. 나는 지금까지 주례를 930여 차례 했다. 1000번을 채우려 했으나 85세 때 병석에 누운 적이 있어 그 후에는 주례를 서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에도 1쌍의 주례를 섰다. ‘부화부순(夫和婦順)’ 즉 부부가 화목하는 것이 결혼의 핵심이다. ‘부화부순’과 ‘성경신(誠敬信)’ 붓글씨를 써준 게 500여 점이 된다. 이런 내용을 이순종 천도교미술인회 회장이 잘 안다. 이 회장이 나를 위해서 전시회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이 회장이 애를 많이 썼다.

사람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이다. 또한 아름다움의 극치는 한울님의 조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美의 극치는 한울님과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사람과 그분과 하나가 된 사람이 창작한 작품에서 나온다. 그러한 작품이 가장 공명을 얻고 우수하다. 천도교 예술인은 ‘시천주(侍天主)’ 신앙을 한다. 그들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위해 항상 수도하고 수련하며 항상 애쓰고 있다. 그래서 천도교 예술인이 창작하는 제품이 만인의 공감을 얻으며 흠모할만한 것이다. 천도교미술인회가 창립되지 않았다면 내 졸필이 어디 가서 전시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더욱더 감사한 마음이다.

▲ 천도교미술한마당전 개막식에서 이영복(왼쪽에서 세 번째) 종법사가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건강을 유지하는 특별한 비결은.
천도교 신앙을 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지금도 매일 한두 시간 수련한다. 수련함으로써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또한 매일 5~6천 보씩 걷는다. 날씨가 안 좋으면 집에서라도 걷는다.

내수도(부인)를 칭찬하는 것은 못난 사람이지만, 나의 건강은 부인 정성의 결과물이다. 내가 결혼한 지가 올해로 62주년이 됐다. 지금까지 부인은 내게 하루 세끼 항상 따뜻한 밥을 해줬다. 이것이 나의 건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생각하는 것이다. 이래서 해월신사(최시형)께서 ‘부화부순’하라고 가르친 것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됐다.

최근 10년 동안 붓으로 연하장을 매년 2~300장 쓴다. 연하장에는 ‘도기장존(道氣長存) 천필감응(天必感應) 도체건강(道體健康) 가도화순(家道和順) 만사여의(萬事如意) 대도중흥(大道中興)’이라는 글을 쓴다. 이 글의 뜻은 ‘도의 기운이 늘 떠나지 않으면 한울님이 반드시 감응하고, 내 몸이 건강하고 집안이 화순해 일이 잘된다. 또한 모든 일이 잘 풀리고 큰 도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 평생 천도교 신앙했는데 갈등 없었는지.
나는 평안북도 태천이 고향이고 대를 이어 천도교 신앙을 한 계대 교인이다. 아버지는 천도교의 독실한 교역자였다. 내가 평생 갈등 없이 신앙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나는 신앙의 큰 갈등 없이 지금까지 왔지만, 신앙의 갈등이 있는 게 한편으로는 당연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신앙 갈등은 부모와 교역자가 자녀나 교인을 바른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신앙심을 부여하지 못하며 교인으로서의 본을 보여주지 못한 원인이 가장 크다는 판단이다.

내가 교령 재직 시 수련을 시켜보면 잘하는 교인은 지금까지 신앙을 잘하고 있는데 제대로 하지 않은 교인은 중간에 교회를 나가거나 개종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역자가 교인들을 잘 지도하고 이끌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고 하겠다.

교인들이 신앙에 회의를 느끼는 것은 부모나 교역자의 나쁜 언행의 영향이 크다. 부모와 교역자는 자기부터 ‘자아완성’해서 자식이나 교인들을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우리 부모님과 교역자를 보니 자랑스럽다. 그분들을 본받아 나도 열심히 신앙해야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이영복(오른쪽) 종법사와 부인 조덕행(왼쪽) 여사. ⓒ천지일보(뉴스천지)

― 평생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1945년 해방되던 해, 징병으로 일본군에 끌려간 일이다. 징병으로 끌려갈 게 아닌데 나이가 줄어 그렇게 됐다. ‘평양 44부대’에 입대한 나는 곧바로 태평양전쟁에 투입되기 위해 군산으로 가게 됐다. 전쟁에 나가면 죽거나 포로가 되는 게 십중팔구였다. 나는 옆에 있는 동료를 통해 감응한 한울님의 은덕으로 부대를 탈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탈출하는 동안 일어났던 일을 어찌 몇 글자로 옮길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구사일생’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한울님의 간섭 없이는 도저히 부대를 탈출할 수 없었다. 내가 사는 동안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은덕을 조금이라도 갚아야겠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천도교 신앙을 하면서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천도교인이 입만 열면 ‘동귀일체’를 부르짖는다. 그러면서도 마음과 정성을 쏟지 못한다. 우리 몸의 눈, 코, 입, 귀 등은 따로 떨어져 있지만 하나가 돼 몸을 위해 움직인다. ‘눈’이 자기가 최고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코·입·귀도 마찬가지다. 천도교인은 우리 몸의 교훈을 배워야겠다. 신앙심이 투철하지 못한 사람은 생각과 말뿐이지 실천하지 않는다. 천도교는 ‘인내천’ 이념으로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를 이룰 사명이 있다. 천도교인은 이를 명심하고 ‘각자위심’을 떠나 ‘동귀일체’하는 신앙이 됐으면 좋겠다.

동덕들은 집행부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게 필요하다. 민본 사상의 근본 발상지인 것을 스스로 자처하면서 선출된 교령에게 힘을 모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집행부도 어려움을 겪고 출발했다. 그 어려움을 통해 얻은 지혜로 일의 실마리를 잘 풀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집행부는 밖에서 보는 눈이 어리석지 않다는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동덕들은 천도교 신앙인의 기본 의무인 ‘오관’을 실행했으면 한다. 오관실행이 어려운 것은 알지만 어렵다고 실천하지 않는 것은 신앙인의 기본 도리가 아니다. ‘어려움을 극복했을 때 신앙심은 그만큼 자라날 것이다. 천도교인 모두가 ‘자아완성’을 해서 천도교의 4대 목표인 포덕천하, 보국안민, 광제창생, 지상천국 건설을 속히 이뤘으면 좋겠다.

▲ 이영복 종법사의 전시 작품. 그의 작품에는 천도교의 정신이 담겨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인내천’ 사상과 단군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인내천’ 사상은 다른 나라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홍익인간을 비롯한 우리 민족의 정신이 면면히 흘러내려 온 것을 승화해 인내천이라는 이념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내천은 홍익인간 사상과 일맥상통한다는 게 내 의견이다. 덧붙여 인내천과 홍익인간이 다른 문화나 사상도 수용할 수 있는 폭넓은 이념이라는 점에서 그 흐름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인내천과 홍익인간, 그 자체에 융합과 통합의 정신이 담겨 있다.

인터뷰하기 위해 이영복 종법사의 자택을 방문하면서 그의 부인인 조덕행 여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조 여사는 이 종법사보다 10살 아래인 82세다. 그런데 조 여사의 모습은 60대로 보였다. 이 종법사는 그의 건강비결을 부인에게 돌렸다. 그렇다면 조 여사의 건강 비결은 무엇일까? 이 종법사에게서 답을 찾기로 했다. ‘부화부순’의 모범 답안이 이 종법사의 가정이라는 생각이다. 이 시대 노후문제를 이 종법사의 가정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3시간이 넘는 인터뷰에도 이 종법사는 조금도 피곤한 모습이 아니었다. 인터뷰 내내 그의 입에서는 세상을 보는 안목과 식견, 천도교 교리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이해 등 주옥같은 말들이 쏟아졌다. 그것을 지면에 다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모쪼록 “나는 하루속히 ‘천도교가 잘 되고 있다’는 세상의 평을 듣고 싶다. 이것이 나의 남은 마지막 소원”이라는 이 종법사의 바람이 속히 이뤄지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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