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살예방을 위한 사찰 묵언마을 화주 지개야스님. ⓒ천지일보(뉴스천지)

묵언마을 화주 지개야스님

‘자살자’ 구하란 마음소리에 출가
가득 쌓인 화 풀어야 자살예방
잃어버린 ‘공화’ 되찾는 일 계속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자연을 벗 삼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 굽은 나무로 절을 짓고 사는 이가 있다. 그는 생사(生死)의 기로에 선 이들의 말을 들어주기 위해 절의 이름도 ‘묵언(默言)마을’로 지었다. 법명 또한 특이하다. 지개야(祉丐也. 61)스님. ‘복 지’ ‘빌 개’ ‘어조사 야’ 자로 얻어먹을 복도 없어 복을 구걸하는 거지란 뜻이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자리한 전통 한옥 형태의 사찰인 묵언마을을 찾았다. 스님이 보낸 이메일 끝에는 ‘물처럼, 바람처럼, 때론 망부석같이 헌 신짝같이 닭벼슬보다 못한 중(僧)벼슬로 세월에 노를 젓는 복거지 지개야 합장’이라 적혀 있다.

스님의 출가 전 인생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거지, 구두닦이, 막노동, 신문배달, 노점상 등 인생의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다. 이후 고학으로 자연과학, 철학, 경영, 행정, 자연치유학 등을 공부했으며 경상북도의원. 안동 축협 상무, 안동 황우촌 경영이사 등을 두루 거쳤다. 그런 그가 왜 출가를 했을까.

◆한 생명 살리는 게 나라·국민 위한 일

그의 첫 만남은 여느 스님과 달랐다. 까칠한 수염에 승복 또한 보살이 입는 옷이었다. 그래서인지 더 편안했다. 스님은 두 평 남짓 한 황토방으로 인도하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차를 냈다. 직접 만든 차였다. 산천에 널린 잎과 약초들이었다. 간장 종지에 차를 담아 손님을 맞았다. 스님은 삶의 고정관념을 버린 듯, 자연스러웠다.

지개야스님은 2004년 51살에 세속을 떠나 출가했다. “2003년 우리나라에는 45분마다 한 사람씩 자살하고, 지구촌 65억 중 42억이 양식 없어 굶고, 또 다른 쪽에서는 과다 영양섭취 로 살을 빼기 위해 굶고 있으며, 하루에 3만 5천 명의 어린이가 굶어 죽는다는 신문기사를 보는 순간, 국회의원이 되어서 국민을 위한 일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살하려고 하는 한 사람이라도 살려 주는 것도 나라를 위한 일이고 국민을 위한 일이라는 마음에 소리를 들었다. 결심하게 됐다.”

단 한 사람의 자살자라도 구하란 마음의 소리를 따라 출가한 스님은 그날부터 누구한테 일원의 보시금도 받지 않고 자살예방을 위한 사찰 묵언마을을 2007년 창건해 한국불교태고종에 등록하고 사회에 환원했다. 출가는 그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가족들의 삶도 완전히 달라졌으며, 그를 따라 아내도 출가(태고종)했다. 스님은 조만간 강원도 등 다른 지역에 제2의 묵언마을을 지으면 떠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종교, 살아있는 사람 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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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바라보는 종교관은 남다르다. “종교는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은 종교가 없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면서 성경과 불경을 들어 설명했다. “예수님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막 2:27). 부처님도 법등명 자등명(法燈明 自燈明) 다른 무엇에 의지하지 말고 지금 여기 살아있는 자신에게 의지하라’고 말했다.”

지개야스님은 종교의 존재 이유가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종교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도시에 십자가, 산사에 고찰이 수많이 있지만 종교를 위한 종교를 강요하거나 또는 종교지도자를 위한 종교로 변질되지는 않았는가? 의문을 제기하며, 자살위기자에게 마음을 편히 내려놓고 쉬어가라고 말하는 곳을 찾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스님은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 ‘동네 사람 내 말 좀 들어 보소’ 해결 못 할 가슴 가득 쌓인 화를 누군가에게 토하고자 한다. 토하지 못해 끙끙거리다 어느 순간 폭발(자살)하고 만다.”

지개야스님은 내담자(도움이 필요하거나 궁금한 것이 있는 사람)가 가슴 가득 쌓인 화를 토할 때 이치에 틀린 말을 해도 토를 달지 않고 그의 말을 긍정하고 추임새까지 넣어 주면서 끝까지 들어준다.

보통 2시간에서 길게는 6시간 이상을 듣는다. 함께 울고 웃고 친구가 되어 간다. 이야기만 끝까지 들어 주어도 천근같이 무겁던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자살예방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스님은 “‘자살’이라는 말은 순서만 바꾸면 ‘살자’가 된다”며 “자살은 남겨진 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행위”라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자살예방을 위한 십계명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산 입에 절대로 거미줄 치지 않는다. 둘째, 주어진 환경을 뛰어넘어라. 셋 째, 주어진 고민에 빠지지 말고 그 자체를 즐겨라. 넷째, 최후의 심판은 시간이다. 다섯째, 빚을 갚으라고 목을 조르는 사채업자에게도 기죽지 마라. 여섯째, 마음먹기에 따라 극락이 되고 지옥이 된다. 일곱째, 쥐덫에 갇힌 쥐가 되지 말고 쥐덫을 관찰하는 제삼자가 되라. 여덟째, 고통과 실패가 없는 성공은 사상누각이다. 아홉째, 부끄러움과 창피는 기준이 없다. 열 번째, 세상의 주인공은 자신이며 나머지는 나를 위한 엑스트라다.

스님은 사람들의 삶이 윤택해지고 풍요로워지는 데도 자살을 결심하는 이들이 더 늘어나는 이유가 따로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마을에 가난한 사람이 살면 마을사람들이 도와주면서 함께 살아가는 인정이 있었다. 지금은 인정과 양심을 돈에 팔아먹고, 가난한 사람의 주머니에 든 10원짜리 동전까지도 자기 이익을 위해 누구보다 먼저 빼앗아 가려는 세상에 살고 있다.” 경쟁 사회에서 지치고 힘든 이들이 자살을 생각 한다는 것이다.

◆웃음·걱정 함께하는 세상 만들자

무한 경쟁 사회로 급속히 변해가는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강조한다. 스님은 “우리에게 민주가 없을 때 공화(共和)의 힘으로 민주를 찾았다. 60~70 년대 수많은 피와 눈물 그리고 투옥에 죽음까지 불사하며 찾았는데 그렇게 찾은 민주가 공화를 버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스님은 ‘공화’를 되찾는 일을 계속할 계획이라 했다. “세상에 마음 아픈 사람이 너무 많아 이걸로는 감당하지를 못해 그래서 방을 24칸 정도 지어서 누구나 와서 잘 수 있게, 너와 내가 아닌 우리 모두의 힘으로 이웃과 이웃이 웃음과 걱정을 함께할 공화를 찾아야 한다. 잃어버린 공화를 찾는다면, 스스로 인간 사표(辭表)를 쓰려고 하는 사람이 그 사표를 찢어 버리고 열심히 사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스님은 이 말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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