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0일 우크라이나 에네르호다르에 있는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 (출처: 뉴시스)
2015년 10월 20일 우크라이나 에네르호다르에 있는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러시아군이 4일(현지시간) 새벽 유럽 최대 원자력 발전소에 포격을 가해 화재가 발생하면서 방사능이 유출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긴박한 상황이 발생했다.

일단 가장 긴급했던 상황은 지났으나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크라이나 에네르호다르에 있는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 당국은 “러시아군의 포격으로부터 원전의 안전이 확보됐다”고 AFP통신에 전했다.

안드리 투즈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TV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의 포탄이 자포리자 원전 6기 중 1기에 불을 질렀다고 밝혔다. 그는 “이 원자로는 보수 중이며 가동되지 않고 있다”며 “그러나 내부에 핵연료가 있다”고 말했다.

투즈 대변인은 교전은 멈추고 방사능 수치는 현재 정상이지만 화재는 아직 진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발전소 6대 중 1대만 가동 중이며 심각한 피해는 없다고 밝혔다.

자포리자 원전 웹사이트에 따르면 원전 규모는 유럽에서 가장 크다. 또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되는 총 전력의 5분의 1을 지원한다. 자포리자 원전에는 발전소 총 6기가 있는데, 1984년에 첫 번째 발전소가 전력망에 연결됐고 1995년에 여섯 번째 발전소가 연결됐다.

투즈 대변인은 포격은 당분간 멈췄지만 상황이 매우 불확실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BBC방송에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폭격했다”며 “러시아군이 탄 흰색 승용차가 떠났다. 이제 협상이 진행될지 아니면 어떻게 할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4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 포격 모습. (출처: 우크라이나 전략통신정보보안센터 텔레그램 캡처)
4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 포격 모습. (출처: 우크라이나 전략통신정보보안센터 텔레그램 캡처)

◆운동복 입고 원전 포격나선 러시아군

앞서 투즈 대변인은 원전 인근서 총격이 계속되고 있어 소방관들이 불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고 전했다. 드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인들에게 공격을 중단하고 소방대가 내부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투즈 대변인도 러시아군에 공격을 멈추라면서 “유럽에서 가장 큰 원전에 실제 핵 위협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공격은 우크라이나의 원자로 15개 중 하나에 손상을 입히면서 세계 최악의 핵 재난인 1986년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또 다른 비상사태를 촉발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IAEA가 전날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원자로에 우발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지 하루 만에 이번 화재가 발생했다.

앞서 에네르호다르시의 트미트로 오를로프 시장은 우크라이나군이 도시 외곽에서 러시아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자포리자 원전에 따르면 많은 러시아 젊은이들이 운동복을 입고 칼라시니코프로 무장한 채 도시에 진입했다. 이후 원전 CCTV에는 장갑차로 보이는 차가 시설 주차장으로 들어가 카메라가 설치된 건물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모습이 담겼다. 그리고 나서 차량에서 밝은 총구 섬광이 보였고 이후 주변 건물에서 거의 동시에 폭발이 발생했다.

러시아는 이미 키이우에서 북쪽으로 100㎞ 떨어진 체르노빌 발전소를 점령했다. 체르노빌 발전소는 1986년 세계 최악의 핵 사고로 녹아내렸을 때 유럽 전역에 방사능 폐기물을 내뿜었다. 일부 분석가들은 자포리자 발전소가 체르노빌과는 다른 안전한 형태라고 지적했다.

◆젤렌스키 “러시아 핵위협 이젠 현실, 막아달라”

러시아군의 자포리자 원전 공격에 IAEA와 미국 핵 학회 등은 핵 시설에 대한 공격을 멈출 것을 촉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원전 화재와 관련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원전 공격과 관련 “유럽은 지금 깨어나야 한다”고 도움을 호소했다.

그는 체르노빌 재난을 언급하며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이 테러 국가(러시아)가 핵 테러를 저지른다”고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선전가들은 세계를 핵 재로 덮겠다고 위협했다. 이제 이건 위협이 아니라 현실이다”라며 “러시아 군대를 막아야 한다. 당신 나라의 정치인들에게 말하라. 우크라이나에는 원자로 15개가 있다. 만약 폭발이 발생한다면 우리의 종말, 유럽의 종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오직 유럽의 즉각적인 조치만이 러시아 군대를 막을 수 있고 핵 시설에서의 재앙으로부터 유럽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