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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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앎이라고 말했다. 동시대를 살았던 소크라테스 역시 ‘너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며 무지에 대한 자각을 설파했다.

동서양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두 현자 모두 모름에 대한 자기성찰이 곧 앎을 향한 출발임을 말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앎이란 단순히 지식이나 상식 따위를 의미하기보다는 보다 심오한 진리 체계를 뜻한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은 우주 삼라만상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교만해서는 안 되고 항상 자기반성과 지적 성찰을 통해 진리 앞에 겸손해야 함을 그들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두 성인의 말이 무식함을 정당화시키는 말은 아니다. 무식함을 깨닫고 겸손하라는 말이지 무식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무지를 자각하고 자기성찰 하라는 말인 것이다. 따라서 지식 앞에서 교만해도 안 되겠지만 무식 앞에서 용감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아느냐? 모른다!’라는 물음과 답변 때문에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TV 토론회에서 여당의 후보가 ‘RE100(알이 백)’과 관련해 질문을 했는데 야당의 한 후보가 그게 뭐냐고 되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RE100’은 SNS 인기 검색어에까지 오르며 ‘핫 이슈’로 떠올랐다.

일국의 대통령 후보가 어찌 RE100도 모를 수 있냐는 주장부터 그 뜻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주장까지 또 대통령 후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에 대통령 후보 토론회가 장학퀴즈냐는 반발까지 입장에 따라 갑론을박 의견이 분분하기까지하다. 아무튼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덕분에 RE100이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된 것만은 분명해졌다.

그렇다면 도대체 ‘RE100’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RE100은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로,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충당하겠다는 목표의 국제 캠페인이다. 2014년 영국의 NGO 기구인 ‘더 클라이밋 그룹’에서 시작한 것으로, 단순히 말해 RE100은 기업이 생산 활동을 할 때 재생에너지 전기만 쓰자는 민간 주도의 세계적 운동인 셈이다. 

RE100은 비영리민간기구에서 캠페인을 처음 시작했지만 현재는 애플과 구글, BMW, 이케아 등 340개 이상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RE100 운동에 참여한 기업들이 자신에게 납품하는 기업에도 RE100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애플은 2030년까지 협력업체에 RE100 조건을 맞출 것을 발표했다. 아이폰이나 애플워치 등에 들어갈 부품을 애플에 팔려면 재생에너지 전기를 써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제 RE100은 세계 시장에서 점점 ‘필수’가 되고 있는 추세다. 새 대통령과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과 상관없이 RE100은 당면 과제가 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기업들이 요구하는 납품 기준이기 때문에, 이를 못 맞추면 우리는 주요 교역 국가에 수출할 방법이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RE100은 정치나 좌우 이념 또는 단순히 환경 문제가 아니라 경제 문제, 일자리 문제로 봐야 한다. 또한, 다음 정부에서 가장 큰 경제 리스크로 다룰 수밖에 없는 중요한 문제로 봐야 한다.

그래서 우리 기업도 빨리 RE100 정책을 서둘러야 한다. RE100을 못하면 수출길이 끊긴다. 한국 기업이 국제 공급망에 못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 기업들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업용 전기료는 OECD 회원국 평균보다 낮다. 한국전력이 석탄과 원자력 위주로 만든 싼 전기를 공급하는데, 재생에너지를 따로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국내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기업의 RE100 도입도 느린 편이다. SK하이닉스와 LG에너지솔루션 등 RE100에 가입한 한국 기업은 10곳에 불과하다. 이중 이행방안 등 구체적인 계획까지 제출해 RE100 승인까지 받은 기업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해외는 재생에너지 전기 요금이 일반 전기 요금보다 싼 경우가 늘고 있다. 무엇보다 산업용 전기료 현실화가 필요하다. 현재 전기료와 재생에너지 전기료가 비슷하게 돼야 기업들이 움직일 것이다. 민간 친환경 경제 운동으로 시작했지만, RE100은 어느덧 우리의 수출경쟁력 지표가 됐다. RE100을 ‘안다’ ‘모른다’ 논쟁은 그래서 소모적이고 불필요하다. 이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이다. 대선주자들이 입을 모아 외치고 있는 제1 공약인 ‘일자리’와 수출 등 ‘경제’ 문제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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