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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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지난 20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의 단일화 제안을 철회했다. 제안 일주일만의 전격적인 철회였다. 이날 안 후보가 쏟아낸 철회의 배경은 자못 비장했다. 안 후보는 윤 후보와 국민의힘을 향해 ‘정치모리배 짓’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심지어 안 후보 자신의 진심마저 윤 후보 측에 의해 무참하게 무너지고 짓밟혔다고 목소리 높였다. 따라서 후보단일화 실패의 책임은 윤 후보와 국민의힘에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을 향한 안철수 후보의 강력한 성토와 함께 후보단일화 철회까지 나오자 많은 사람은 그 배경이 더 궁금했을 것이다. 그 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안 후보는 차마 그 얘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후보단일화 철회 기자회견 직전에 서울 남산의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다녀왔다는 소식을 전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안 의사가 남긴 비장한 글,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라는 글귀를 인용했다. 마치 자신의 비장한 심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듯한 메시지였다.

안철수 후보의 긴급 기자회견 이후 후보단일화 논의는 그대로 무산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 뒤끝은 그야말로 ‘후폭풍’이 되고 말았다. 안 후보가 후보단일화 실패의 책임이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에 있다고 강조한 대목이 적잖은 논란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안 후보 측에서 거친 비난이 나왔다. 점잖기로 유명한 최진석 국민의당 상임선대위원장이 이튿날 방송 인터뷰에서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안 후보가 언급한 ‘고인의 유지(遺旨)’ 발언에 대해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조롱 투의 비난을 한 것과 관련해, 우리 정치가 이런 수준까지 됐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애초에 이준석 대표를 ‘제거’했어야 했다는 말까지 내놓았다. 그러자 이 대표도 즉각 국민의당을 향해 ‘장사치’로 폄하하면서 ‘(단일화)장사’를 그만하라고 쏘아붙였다. 안 후보의 후보단일화 제안을 장사치들의 ‘거간’이나 ‘장삿속’으로 치부한 것이다. 이쯤이면 나가도 너무 나갔다. 듣는 국민들은 몹시 화가 나고 불쾌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국민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 새, 뭔가 거래가 오갔다는 뜻으로 들리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간’의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이준석 대표가 23일 한 방송 인터뷰에서 “국민의당 관계자들이 안철수 대표의 의사와 관계없이 우리 측에 안철수를 접게 만들겠다는 등의 제안을 해온 것도 있다”라고 폭로한 것이다. 결국 올 것이 온 셈이다. 그러니까 안 후보가 겉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며 ‘안 철수’를 선언하고 있지만, 국민의당 내부에서는 일부 장사치들의 거간이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안 후보 주위에 있는 그 장사치들이 누군지에 다시 관심이 모아졌다.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이슈는 이런 식으로 점점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됐다. 말 그대로 ‘정상배들의 거간’이요, 국민도 모르는 새 ‘나눠 먹기’를 주고받는 ‘밀실야합’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안 후보 주위의 그 장사치들이 누구냐는 새로운 이슈에 하루 종일 관심이 집중됐다.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난리가 났을 것이다. 안 후보의 진정성을 팔아먹는 그 장사치들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안 후보의 대선 레이스가 더 힘들다는 판단 때문인지 이번에는 이태규 국민의당 총괄선대본부장이 나섰다.

이태규 본부장은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2월 초에 이준석 대표와 비공개로 만나 합당을 제안받았다고 말한 뒤 안철수 후보의 사퇴를 조건으로 두 당의 합당, 종로 공천, 부산시장 출마, 최고위원과 공천심사위 등의 참여를 보장하는 제안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본부장은 이 대표가 말한 그 거간꾼이 누군지를 밝혀야 한다며 공세를 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그가 누군지는 스스로 찾아보라며 다시 국민의당에 공을 넘겼다. 진흙탕 싸움 중에서도 서로 공을 떠넘기는 언행은 안타깝다 못해 오히려 부끄럽다. 정말 우리 정치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슬프고 불행할 따름이다. 그리고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는 안철수 후보가 왜 이렇게 폄하돼야 하는지, 그리고 안 후보의 정치행보는 왜 늘 이런 식인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은 안 후보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제3지대정치의 비극’이 재현되는 느낌이어서 이를 지켜보는 심정은 너무도 참담할 따름이다.

그동안 한국의 선거정치에서 특히 대선 때마다 ‘제3후보’에 대한 후보단일화 문제가 늘 따라붙었다. 대통령 중심제 권력구조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제3후보의 ‘약한 고리’를 때리며 국민의 관심사로 만들어 내는 ‘단골 이슈’가 된 것이다. 사실상 ‘정책 대결’이나 비전을 놓고 경쟁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이다. 단일화 협상은 결국 밀실 나눠 먹기 행태가 되기 십상이며, 동시에 정책과 정당의 다양성을 짓밟는 거대 양당의 ‘정치적 폭력’에 가깝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가 보여 왔던 그동안의 고단했던 정치 행보가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물론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아픈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또다시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협상을 재개하려는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젠 제발 멈추길 바란다. 더 이상 안 후보를 욕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차례의 대선후보 TV토론회를 지켜봤지만, 안 후보가 몰라보게 많이 발전했다. 시대를 보는 눈과 정책에 대한 이해도 그리고 핵심을 짚어내는 능력은 탁월했다. 그런 안 후보를 놓고 또 후보단일화 ‘불씨’ 운운하며 더 이상 초라하게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국민은 끝까지 안 후보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 혹 그럼에도 후보단일화를 밀어붙일 경우, 더 큰 역풍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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