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종교시설을 기반으로 공동체 생활을 해온 충남 천안의 작은 산골짜기 마을에서 400명대 규모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터졌다. 주민 500여명 중 80% 이상인 371명(1일 0시 기준)이 감염됐다. 방역당국은 마을 내 교회에서 진행된 대면예배와 김장 등을 매개로 전파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은 충남 천안 광덕면 H마을에 있는 교회. ⓒ천지일보 2021.12.3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종교시설을 기반으로 공동체 생활을 해온 충남 천안의 작은 산골짜기 마을에서 400명대 규모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터졌다. 주민 500여명 중 80% 이상인 371명(1일 0시 기준)이 감염됐다. 방역당국은 마을 내 교회에서 진행된 대면예배와 김장 등을 매개로 전파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은 충남 천안 광덕면 H마을에 있는 교회. ⓒ천지일보 2021.12.3

교회 기반 종교공동체 마을
21일 첫 확진 이후 400명 넘어
등록 주민 중 80% 이상 감염
타지역 확진자도 53명 발생

[천지일보=임혜지, 박주환 기자] 천안의 남쪽 광덕(廣德)면, 산골짜기 사이로 굽이굽이 들어가다 보면 우측으로 한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천안시 광덕면 지장리 H마을이다. 이곳에선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했다.

천안시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H마을에서는 지난달 21일 최초 확진자 발생 이후 22일 8명, 23일 229명, 24일 42명, 25일 19명, 26일 6명, 27일 52명, 28일 4명, 29일 2명, 30일 8명 등 계속 확산세가 이어지다 지난 1일(0시 기준) 누적 424명을 기록했다. 천안시 확진자 수는 371명으로 이 마을 주민(439명)의 80% 이상이 감염됐다. 타지역 확진자는 53명으로 서울, 경기, 대전, 전북, 전남, 제주 등 전국에서 발생했다.

29일 오전 본지 취재팀이 H마을은 한산하다 못해 적막감만 감돌았다. 감염된 주민들이 치료시설로 이송되고 격리된 탓에 거리에선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고, 수십 채의 주택에선 사람의 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지붕에 대형 십자가 3개가 세워진 다소 특이한 형상의 교회 건물은 이미 폐쇄돼 접근이 불가능했다.

오후 2시. 구호 물품을 실은 차가 도착하고, 추가 검사를 위한 선별진료소가 마을 앞에 설치되면서 주민들의 모습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학생부터 노인까지 연령층은 다양했다. 주민들에게 말을 걸자 “잘 모르니 물어보지 말라”는 등 경계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곳에서 만난 반장 A씨에게선 “모임도 줄이고 방역수칙을 잘 지켰는데 코로나19에 왜 걸렸는지 모르겠다”는 정도의 말밖에 듣지 못했다.

방역 당국은 지난달 21일 자발적 검사 후 양성 판정을 받은 확진자의 이동 동선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확진자가 이 마을에 거주하는 사실을 파악했다. 다음날 8명의 추가 확진자가 나오자 마을에 즉시 선별진료소를 설치하고 주민 289명에 대한 전수 검사를 실시했다.

모두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천안시는 브리핑을 열고 이 마을 주민 208명이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자가격리 중이던 주민 중에서도 확진자가 속속 나타나면서 23일에만 23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당국은 마을 내 종교시설에 대해 예배 중단과 긴급 폐쇄 조치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주민들은 지난 14일, 18일, 21일 마을 안에 있는 교회에서 대면예배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15~16일에는 70여명이 모여 공동으로 김장을 했는데 방역당국은 이때 코로나19가 확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예배와 김장 등을 거치면서 주민에서 주민으로 옮겨가며 바이러스가 전파됐을 것이란 추정이다.

[천지일보=박주환 기자] 집단감염이 발생한 충남 천안 광덕면 H마을에서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기 위해 주민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21.11.29
[천지일보=박주환 기자] 집단감염이 발생한 충남 천안 광덕면 H마을에서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기 위해 주민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21.11.29

이 마을은 1990년대 ‘교회’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1만평 규모의 농지를 사서 주택 여러 동과 교육시설, 예배당 등을 만들고 700여명의 신도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했다. 4인 가구, 1인 가구, 노인 단독 가구 등 가족 형태는 다양하다. 대부분 무직으로 외부 활동 없이 마을 내에서만 생활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주민도 있다고 시 관계자는 설명했다.

특히 이 마을은 과거 영성 치료로 이름을 알렸는데, 일명 ‘눈안수’ 등 다소 비상식적인 종교 행위가 이뤄져 논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경부터 이 마을 잠입 취재를 해온 오명옥 종교와진리 기자는 YTN과의 인터뷰에서 “눈을 찌르면서 안수를 하면 속의 질병이 치유된다고 하는 치유 행위들을 오래 했다”며 “말기 암인데 항암 치료를 포기하고 마을에 들어온 신도도 만난 적 있었고, 뇌 신경이 안 좋아 이 마을에 눈 안수를 받으러 들어왔다가 결국 사망을 한 신도 가족들로부터 제보를 받은 적도 있다”고 밝혔다.

마을 내에서는 코로나19 확산 시기에서도 예배와 함께 기도회, 선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끊임없이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해 12월까지 기록된 월별 운영계획에 일요일 예배와 목요일 철야기도를 토대로 매일매일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기록돼 있다.

오 기자는 “교회에서는 정기적으로 부흥회를 진행했다”며 “공부보다 신앙훈련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학생들 학교까지 결석시키며 영성훈련에 참석시켰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대규모 집회가 없었더라도 소규모 모임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진행돼왔다. 온라인에는 지난 10월 말 그룹별로 팀을 이뤄 축구대회를 열었다는 내용이 게시돼 있다.

신앙을 매개로 만들어진 이 마을은 주변과 소통도 자유롭게 이뤄지지 않고 폐쇄적으로 집단생활을 해온 것으로 보여진다. 인근 주민 A(85, 남)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20년 전에 마을이 생겼지만, 교류는 전혀 없었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도 밤낮없이 기도 소리가 크게 들린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인근 지역 면장도 “주민들이 아랫마을 주민들과 교류를 거의 안했고, 아랫마을 주민들도 (H마을 주민들과) 특별히 교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충남 천안시 광덕면 H마을에 신약 성경 속 구절이 적힌 트럭이 놓여있다. ⓒ천지일보 2021.11.29
집단감염이 발생한 충남 천안시 광덕면 H마을에 신약 성경 속 구절이 적힌 트럭이 놓여있다. ⓒ천지일보 2021.11.29

이 지역 개신교 연합체 천안시기독교총연합회(천기총)은 입장문을 내고 “천안시 광덕면에 있는 해당 시설과 교류가 없었다”며 “정체가 모호한 단체”라고 선을 그었다.

특히 기초조사가 이뤄진 확진자 중 90% 이상이 백신 미접종자로 확인되면서 미접종 이유가 종교와 연관된 건 아닌지에 관한 의문도 나오고 있다.

천안시 관계자는 “마을 주민 대다수 연령층이 60대 이상으로 높고 백신 미접종 이유로 기저질환을 언급한 주민이 많았다”며 “백신을 강요할 수는 없고 홍보나 권고를 해 나가는 부분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사실상 이 마을 주민 80% 이상이 감염된 데다, 마을 주민들이 외부와 교류가 많지 않았던 점 등을 토대로 지역 확산 우려가 적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마을에 거주하는 가족을 만난 뒤 감염되는 사례 등이 계속 나와 전파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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