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not caption

‘적벽대전’은 고대 중국 삼국시대 유비와 조조의 전쟁이었다. 소설로 영화로 세계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드라마 같은 중국 역사다. 이 전쟁에서 냉철하고 원리원칙을 고수했던 영웅 조조는 부드럽고 유한 유비에게 대패한다. 단단한 쇠는 부러지나 유연한 것은 질겨 오래 간다는 것을 교훈으로 남기고 있는 것인가.

판소리 적벽가를 보면 승리한 유비는 당대의 현군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패장 조조는 죽음 앞에서 살려고 버둥거리는 비열한 인간으로까지 표현되고 있다. 본래 역사는 아무리 훌륭한 영웅일지라도 패장이 되면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편이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유명한 글이 등장한다. 바로 ‘삼고초려(三顧草廬)’ 혹은 ‘삼고모려(三顧茅廬)’라는 사자성어다. 촉한의 왕 유비가 최고 두뇌인 제갈량을 초빙하기 위해 오두막집을 세 번이나 찾아가 마음을 얻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적벽가에는 제갈공명이 유비가 찾아와 만났을 때의 표현이 과장되지만 재미있다.

(전략)… 공명이 그제야 놀란 체하고 의관을 정제한다. 머리에는 팔각윤건(八角輪巾), 몸에는 학창의(鶴氅衣)로다. 백우선(白羽扇) 손에 들고 당하에 내려와 현덕을 인도하여 예필좌정(禮畢坐定)후에 공명이 눈을 들어 현덕의 기상을 보니 수수한 영웅이요, 창업지주가 분명하고, 현덕도 눈을 들어 공명의 기상을 보니 신장은 팔척이요, 얼굴은 관옥 같고 미재강산정기(美哉江山精氣)하여 담연청기(淡然淸氣)하고 맑은 기운이 미간에 일어나니 만고영웅 기상이라. 현덕이 속으로 칭찬하며 공손히 앉아 말을 한다(의역. 하략)….

제갈량은 유비의 청을 받아들이면서 소회를 적었다. 그것이 명문장으로 회자되는 출사표(出師表)가 아닌가.

‘신은 본래 시골의 선비로서 몸소 남양에서 밭갈이하며 구차히 어지러운 세상에 목숨을 보존하려 했을 뿐, 제후들 사이에 이름이 알려지기를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선제(先帝,유비)께서 신의 천한 몸을 천하다 생각지 않으시고, 황공하게도 스스로 몸을 굽히시어 세 번이나 신을 초막 속으로 찾아오셔서 신에게 당면한 세상일을 물으시는지라, 이로 인해 감격해 선제를 위해 쫓아다닐 것을 결심하게 됐던 것입니다.’

발탁된 제갈량은 유비가 촉한의 황제에 오른 뒤에는 최고 관직인 승상(丞相)이 됐다. 유비는 제갈량에게 자신의 아들 유선(劉禪)이 무능하면 몰아내고 황제 자리에 앉아도 좋다고 유언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충성으로 그 아들을 군주로 섬겼다. 오나라와 동맹, 위나라와 항쟁했으며 민치(民治)에 힘썼다고 기록 되고 있다. 유비가 세 번이나 찾아가 고개를 숙여 인재를 잘 골라 아들까지 덕을 본 셈이다.

윤석열 국민의 힘 대선후보가 삼고초려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추대가 무산됐다. 중도층 지지 확산을 노리는 윤 후보가 영입한 3김에 대해 김 비대위원장의 부정적 견해가 상충하고 있는 것이다.

보도를 보면 김 측이 험한 말까지 불사해 영입은 루비콘 강을 건너갔다는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김 전 위원장이 민주당 수뇌부와 만났다는 설도 있다. 그의 이중적 행태로 보아 천하의 제갈량은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