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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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전박대(門前薄待)’는 문 앞에서 모질게 대한다는 뜻이다. 찾아온 사람을 집안으로 들이지 않고 냉정하게 쫓아버린다는 의미로 쓰여 진다. 굶주린 자식들의 허기를 달래주려고 쌀을 얻으러 간 흥부. 몰인정한 형 놀부내외의 문전박대에 흥부는 그만 서럽게 우는데, 판소리는 처연하기만 하다.

‘(전략)… 아이고 기가 막혀, 흥부가 기가 막혀, 부모께 나실 적 우렁찬 울음의 형제애, 이제는 욕심에 눈이 멀어 호형호제 어디에, 굶주림보다 서러… (하략)….’

판소리 춘향가에서도 문전박대 얘기가 나온다. 춘향이 옥중에서 하늘 같은 서방님을 기다렸으나 이 도령은 거지행색으로 월매집을 찾아온다. 좌절한 장모는 이 도령을 문전박대하는데 월매를 속이는 어사 이 도령의 능청이 재미있다.

춘향은 옥중에서 월매에게 서방님 문전박대를 말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유언을 한다. 일편단심 열녀 춘향의 이 도령 사랑가가 또 눈물겹다.

삿갓을 쓰고 전국을 돌며 시와 술로 살았던 김병연(金炳淵). 선비가 문전박대 시(詩)를 쓴 것은 그가 유일하다. 그가 쓴 시에서 조선시대 세정의 인심을 읽을 수 있다.

‘해질 무렵 남의 집 문을 두드리니/ 주인 놈은 손을 휘저으며 나를 쫓는구나/ 두견새도 야박한 인심을 알았음인지/ 돌아가라고 숲에서 울며 나를 달래네(斜陽叩立兩柴扉 三被主人手却揮 杜字亦知風俗薄 隔林啼送佛如歸).’

전국을 떠돌며 걸식을 해 살던 김병연은 가는데 마다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러나 인정 많은 아낙에겐 칭송을 하고 인색한 서당 훈장은 욕으로 골려주기도 했다.

각설이는 거지행색으로 거리나 장터를 돌아다니며 재담과 타령으로 구걸하는 무리였다. 이들에게 문전박대는 가장 두려웠다.

이들은 아낙네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음담으로 노래를 불러 대문을 열게 했다. 굶주린 이들의 소리는 서글픔이 담겨있다. 각설이 타령은 많지만 다음 소리는 문전박대에 대한 그들의 아픔이 묻어 있다.

‘(전략)… 얼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들어간다, 장님거지 들어간다. 저마다 문전박대, 세상인심 야박하다. 각설이 구걸하니, 어찌 그리 배고픈가. 아침은 건너뛰고, 저녁에는 굶고 잔다. 누룽지 그립구나, 깡보리밥 그립구나(하략).’

청와대 정무수석이 문 대통령이 퇴임할 때 ‘착한 대통령이니 박수를 받고 떠났으면 한다’는 뜻에서 ‘문전박대’라는 용어를 썼다. 문전박대를 받았으면 이라니. 박대(拍待)로 쓴 말이지만 걸맞지 않은 용어다.

문 대통령은 내년 퇴임 시 정말 국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고 떠날 수 있을까.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긍정보다 부정 평가가 더 높다. 4년간 국정 평가가 좋은 성적이 아님을 얘기해 주는 것이다.

대통령의 성품은 인자해야 하지만 맥없이 착하면 문제가 많다. 문 대통령이 국정 4년 동안 한 시도 편안한 날이 없었던 것은 바로 인사의 난맥상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기본에 충실하지 못해 국민들의 신망을 잃었다.

진정으로 다음 대통령은 문전에서 박대당하지 않고 국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떠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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