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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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희대의 사기꾼으로 통하는 봉이 김선달. 요즈음 언론에 민주당 정청래 의원 설화(舌禍)로 부각된 주인공이 바로 봉이 김선달이다.

그는 실지 인물이었을까, 아니면 지어낸 설화였을까. 일설에는 김삿갓처럼 실제 생존했던 인물로 전국을 떠돌며 세상 물정 모르는 양반들과 부자들을 골려 먹었다는 설도 있다.

‘선달(先達)’이란 벼슬 없이 살아가는 한량을 지칭한 말이다. 평소 무술을 연마해 건장한 체격을 지니고 있어 배짱도 있고 양반자제들도 함부로 못했다고 한다. 봉이 김선달이 두둑한 배짱으로 양반과 탐욕스런 부자 사이를 오가며 골려 먹은 것은 건장한 체격이 아니면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주막에서는 곧잘 양반자제들과 예쁜 기생을 사이에 두고 싸움을 벌였으며 포졸들이 출동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혜원의 풍속도에는 두 젊은이가 기생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을 벌이는 그림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한량이나 선달들이었다.

봉이 김선달 얘기를 담은 판본은 여러 점이 내려온다. 선달은 한 여름 과거장에 솜옷을 껴입고 시험장에 나타났다. 시험관이 의아하게 생각하자 학질에 걸렸다고 말했다. 시험관이 병이 옮을까 무서워 멀찍이 떨어져서 경전을 외우라고 했고,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도 않는데 얼른 쫓아버려야겠다는 생각에 합격시켰다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얘기는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사기사건이지만 고을 사또를 골려준 일화도 많다. 어느 날 선달이 절에 놀러갔다. 그런데 탐욕스러운 현령이 기생들을 데리고 한밤중에 들이닥쳐 방을 비워달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선달은 스님들과 짜고 산신령으로 가장해 사또에게 참기름 바른 음식을 먹게 했다. 배탈이 난 사또가 밤새 배를 움켜잡고 고통스런 밤을 보낸 것은 통쾌한 얘기다.

선달이 겨울밤에 산골짜기를 헤매다가 외딴 집을 발견했다. 문을 두드리니 집에서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아들이 맞이했다.

따뜻한 방에서 몸을 녹인 후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선달이 자신은 평양에 산다고 말했다. 노인은 ‘그럼 혹시 봉이 김선달을 아시오?’하고 물었다. 주인은 김선달을 만나보는 것이 필생의 꿈이었다. 봄이 되면 노부를 모시고 김선달을 뵈러 갈 예정이라는 효자 아들의 말에 선달은 더 이상 신원을 숨기지 못했다.

그가 신분을 밝히자 놀란 부자는 진객을 대하듯 산삼주까지 꺼내 정성껏 대접했다. 노인은 선달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청해 들으며 겨울밤을 즐겁게 보냈다는 것이다.

최근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전통사찰 입장료를 ‘봉이 김설달’에 비유해 곤혹을 치르고 있다. 조계종 승려들이 여의도 민주당사를 찾아가 항의하며 정 의원의 출당을 요구하고 있다.

간혹 야당에 대한 독설로 주목을 받아 온 정 의원의 이번 설화가 쉽게 가라앉을지 미지수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터진 악재에 민주당은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전통사찰에 대한 입장료 문제는 지자체와 조계종 측이 대립되는 양상을 보여 왔다. 이용객들은 이의 폐지를 주장하고 사찰 측은 문화재 보호와 보수에 대한 재원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쪽 편만 들어 해결될 일이 아니다. 거기다 정 의원이 사찰 입장료를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김선달의 사기에 비유한 것은 아무래도 지나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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