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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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연산군에게 붙어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른 유자광이 젊은 시절에는 청렴관을 지녔던 인물이다. 예종이 즉위하자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간언한 기록이 실록에 전한다.

“지금의 사대부들이 염치의 도리를 잃고 뇌물을 공공연하게 행하여 소와 말, 금백 토지와 노비를 서로 증여하면서 이르기를, ‘해 저문 밤이니 아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이는 이른바 ‘그 욕심이 끝이 없는 것’과 같으며,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근래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와 반역하는 신하가 잇달아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이 풍속의 영향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이처럼 청렴하게 보였던 유자광도 나중에 권력을 잡은 후에는 본령을 잃고 악행을 많이 저질렀다. 임금이 총신이라고 잘못을 두둔하며 범죄를 비호하니 무서울 것이 없었던 것이다. ‘절대권력은 망한다’는 사실을 유자광의 고사는 증명한다.

임금이 부정에 단호하지 않으면 권신들이 기고만장해 국정을 농단하고 장난을 쳤다. 세종은 현군이었지만 공신들의 뇌물에는 솜방망이로 대응했다.

원로 공신 조말생의 뇌물사건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가 병조 판서 재직 당시에 뇌물을 받고 소송 판결을 지연시켜줬다. 그리고 토지를 뇌물로 받고 부하의 관등을 올려준 것이 들통 났다.

간관들이 조말생의 탐욕을 들춰 임금을 몰아붙였다. ‘죽어도 그의 죄가 남을 법하다’며 즉각적인 구속을 주장했다. 세종은 그가 선왕 태종이 총애했던 인물로 공로가 있다며 귀양을 보내는 것에 그쳤다. 그리고는 2년 후 귀양에서 돌아오자 재상으로 임명한다.

돈에 대한 애착은 고관이나 서민이나 다를 것이 없다. 가난에 찌들어 자식들의 호구도 책임지지 못했던 흥보. 우연히 지나는 길에 호방을 만나 매품 권유를 받고 엽전을 받는다. 집에 돌아온 흥보는 아내와 돈을 들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돈타령을 하는데.

‘… 돈 좋다 돈 좋아 돈 좋구나 돈 봐라/ 잘난 사람은 더 잘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맹상군의 수레바퀴처럼 둥글둥글 생긴 돈/ 생살지권을 가진 돈, 부귀공명이 붙은 돈/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돈 봐라…(하략).’

그러나 기쁨도 잠시, 흥보 아내는 남편이 매품을 팔려고 받은 돈이라는 데 절망한다. ‘아이구 영감 나는 돈도 뭐고 다 싫소~’ 판소리 흥보가는 이 대목에서 더욱 처연해진다.

성남시 대장동 게이트를 보는 다수 국민들은 억장이 무너지고 있다. 검찰이 날카로운 사법잣대를 들이대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천문학적 부당이익이란 범죄가 확실한데도 주모자들을 구속도 시키지 않고 있다.

국민의 70%가 특검을 바라는데도 묵묵부답이다. 대통령은 국회에 떠밀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훌쩍 외국으로 떠났다. 이쯤 되면 민의를 대변하는 정부의 역할을 잊은 것이다.

분노한 국민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돈은 노력하고 정당하게 벌어야 좋은 돈이다. 뇌물과 불법으로 얻은 검은 돈, 남을 등치고 사기행각으로 번 돈은 불행한 돈이다. 하물며 공직자들이 국민을 속이고 업자들과 결탁해 비밀리 부를 획책해 그것을 나눈다는 것은 민심에 대한 중대한 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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